자유북한운동연합
 
5년 전 3-1절 국민대회를 회상하며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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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애국심으로 하나가 됐던 그때의 정신을 되살려 좌파와의 새로운 싸움과 진정한 보수정권 창출을 준비해야 
 
그때 우리가 한 자리 하기 위해, 혹은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던가? 그때 우리는 ‘애국’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였다.
 
  3-1절 국민대회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나라가 망할 것만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내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대선 이후 두 달이 넘도록 TV를 보지 않다가, 대통령 취임식 즈음해서 다시 TV를 보기 시작했지만, TV만 보면 속이 뒤집혔다.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정권을 잡은 좌익들에게 “대한민국의 애국세력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시위하고 싶었다.

주한미군들, 미국 등 우방국 국민들, 해외동포들에게 “아직 대한민국이 완전히 빨갱이들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2003년 3월1일, 나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3-1절 국민대회에 나갔다.


    그날 군중대회에는 10만 여명이 참가했다. 70대의 6-25참전용사들, 사오십대 주부들, 나이어린 대학생들과 함께 목이 메어 <애국가>를 불렀다. <전우가>와 <조국찬가>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조국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대로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저 반역의 무리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투지였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지금은 저들이 저렇게 기세등등해도 결국은 저들을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힘으로 노무현 5년을 버텼다. 내가 노무현 5년 동안 좌파와 싸웠던 힘은 거기서 나왔다.

그 후에도 6월25일이나 8월15일이면 ‘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그밖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북한인권, 노무현 정권의 친북정책 규탄 등을 위해 열린 집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도 내 가슴 속에 벅찬 감격으로 기억되는 것은 노무현의 취임 직후에 있었던 3-1절 국민대회였다. 나는 그날 국민대회가 2002년12월19일 노무현 당선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대한민국 애국세력이 반격을 개시한 ‘역사적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조갑제닷컴에 들어가 그때의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젊은 녀석들만 데모하고 도로 점령하는 줄 알면 오산이야. 우리가 못할 거 같아? 이제 우리가 나라 살리는 데모 할 거야."

"대선이 끝난 다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60대 이상은 고려장(高麗葬) 지내는 분위기다. 나라가 어수선한데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나는 고려장 당해도 싸다. 이렇게 나오는 것으로 내가 이 나라에 아직도 소용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나라가 넘어가게 생겼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면 6-25때 죽은 전우들 볼 면목이 없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김정일은 범죄자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자는 김정일의 공범이다. 나는 범죄자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다“.

그때 60,70대 노인들, 40대 직장인이 토해 놓은 말들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날 연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은 “참여정부가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 내 사람들만 참여하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5년간 노무현의 행태를 정확하게 예언한 탁견이었다.

 위기의 애국우파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작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후보는 참패를 당했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 10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대선 직후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인수위의 설익은 행태를 걱정하는 사람, 새로운 준비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큰 흐름은 낙관적이었다.


지금은?

답답함과 걱정, 우울함, 냉소가 지배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제공했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는 수석비서관이나 장관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땅에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요즘 언론의 논조나 사람들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건 임기 중반을 넘긴 레임덕 정권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부는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한 지 아직 1주일도 안 됐고, 국무총리가 국회의 인준을 받은 지 하루도 안 지난 정부다. 그러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애국운동진영의 동향이다.

“2007년 대선 때까지 내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겠다”던 어르신들께서는 “이제 한 시름 놨다”면서 마음을 턱 놓고 계신다.

알게 모르게 애국운동진영이나 우익 씽크탱크, 시민단체들을 후원해왔던 ‘가진 자’들은 “이제 당신들 할 일은 다 끝났다”면서 지원중단을 선언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작년 한나라당 경선 이후 손을 놓고 있다. 이회창 총재에게 ‘보수당’의 기대를 걸고 달려갔던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회창 총재 측근들의 몰(沒)이념과 엘리트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피눈물을 쏟고 있다.

“이명박은 절대 안 된다”고 하던 보수우파 논객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실패 등을 보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냉소를 흘린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거니...”라고 믿고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냈던 애국우파 인사들은 공천은커녕 컷오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줄줄이 낙마한 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향해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뉴라이트’그룹들 가운데 일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정치권을 향해 달려가거나, 벌써부터 이명박 정권과 한 묶음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내내 고생했고, 작년 대선 국면에서 ‘반짝 호황’을 맛보았던 많은 우파인터넷 매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는 사이에 대선 참패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좌파들은 서서히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단 쉰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파동에 힘입어 기세를 회복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삼성문제를 빌미로 기득권세력에 대한 공세의 끈을 조였다 놓았다 하고 있다.

KBS와 MBC 뉴스나 시사프로들을 보면, 문득문득 ‘쟤들이 아직 안 변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자

몇 년 전, 전두환~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비서관을 지냈던 김충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2007년 준비가 덜 된 우파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더 걱정이다. 그 정권이 잘못할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좌파들은 ‘봐라,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맡겨봤지만, 잘하는 게 뭐 있냐?”면서 국민들을 선동할 것이다. 그래서 좌파에게 정권이 넘어가면 그 후에는 대한민국에서 우파가 두 번 다시 정권을 잡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섬뜩한 경고지만, 그냥 흘려버릴 말은 아니다.


대선 승리의 환호, 10년만의 우파(?) 대통령 취임의 감격, 새 정부 출범에 따르는 들뜸 도 이만하면 됐다. 청와대나 정부로 들어가지 못한 서운함도 이제는 추스릴 때가 됐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분노, 이회창 총재에 대한 배신감도 슬슬 정리해야 할 때다.


이제 다시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우선 4-9총선에서 좌파들이 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파시민단체들이 연대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진정한 보수우파세력의 출현을 위해 우파단체들의 내실을 기하고, 씽크탱크와 리더십양성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좌파들이 장악한 문화예술계의 헤게모니를 탈환하기 위한 싸움도 벌여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건국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사를 보여주는 이승만-박정희기념관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인권, 북한해방을 위한 노력도 물론 계속되어야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빛이 나지 않아도, 직위나 명예로 보상이 돌아오지 않아도, 이건 애국우파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5년 전, 3-1절 국민대회를 돌이켜 보자.

그때 누가 알아주기를 바랐던가? 청와대나 정부에서 한 자리 하려고,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아보려고 그랬던가?

그런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나라를 살리자고, 오직 나라사랑하는 일념으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고, 통성기도를 했다.

그때 우리가 이명박을 위해, 박근혜를 위해, 이회창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던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박빠가 어디 있고, 명빠, 창빠가 어디 있었나?

그때 우리는 ‘애국’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였다.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그 때,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만 같던 그때, 좌파들이 기세등등해서 날뛰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 행복감을 영원히 이어나가기 위해, 좌파들에게 다시 내 조국을 내주지 않기 위해, 5년 전 3-1절 국민대회 때의 그 순수했던 열정으로,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대한민국을 위하여!


강철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