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나와 자유선진당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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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무소속 후보 선거 캠프에 몸담았던 관계로 이회창 씨가 총재로 있는 자유선진당과 관계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아서 이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나는 지난 대선이 끝나고 나서 이회창 총재의 부탁으로 정당을 창설하기 위한 기획단 멤버로 일했다. 기획단장은 강삼재 전 의원이었고, 위원은 권선택 국중당 사무총장, 최한수 건국대 교수, 이용재 (관료 출신으로, 세종문화회관장을 역임), 허성우, 그리고 나였다. 이 총재의 측근인 이흥주 씨는 강삼재 단장의 요구에 따라 기획단에 참여하지 못했다.

기획단은 창당 발기인 대회를 준비하고,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약 2주일간 매일 아침 일찍이 나와서 열심히 일했다. 당명을 ‘자유신당’으로 정한 것 등은 보람있는 일이었지만, 외부 인사 영입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창당준비위원장으로 당의 간판 얼굴이 될 새 인물을 영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영입은 거의 성공할 뻔 했었다. )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절망했고, 이 당이 잘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됐다. 외부인사 영입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던 강삼재 총장과 같이 일 했던 나날은 추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허탈한 것이라서 강 총장에게 다음 단계인 창당준비위원회에서는 쉬겠다고 말했다.

1월 10일 ‘자유신당’ 발기인 대회

1월 10일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참석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 전날 저녁에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창당준비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총리인지 뭔지를 해 보겠다고 변절해서 노무현의 아래로 들어갔다가 노무현 정권이 망해가니까 대선 기간 중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인물이 창당준비위원장이 된다고 하니 허망하기만 했다. 그러나 강삼재 총장이 준비위원장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발기인 대회 날 김혁규 씨가 축사를 하고 이 총재는 그와 만세를 불렀다. 나는 속으로 이 총재가 망령이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대선에 출마하고, 또 새로운 인재를 모아서 보수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사람이 어떻게 김혁규와 만세를 부른다는 말인가.

발기인 대회가 끝난 후 프레스 센터 외신클럽에서 이영덕 선배, 전원책, 류석춘, 손상윤, 최대집, 박상학, 권명호, 백승목 씨 등 우파 동지들과 커피를 마신 일이 오히려 정말 즐거운 추억이었다. (뉴스타운 기자가 찍은 사진이 나의 갤러리에 있다.)

창당준비위원회에선 대선 후 베트남에 여행하고 돌아 온 류석춘 교수가 수고를 했다. 하지만 재산가 집안의 이정훈 교수(이 총재 큰 아들 정연의 친구)가 창준위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여러 이유로 류 교수의 심사가 편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2월 1일 창당대회

발기인 대회 후 우리는 류재건 의원 등이 합류하는 등 신당의 정체성 문제가 석연치 않아서 입당을 미루어 왔다. 그리고 사실 신당과는 점차 멀어졌다. 김혁규 전 지사의 주장대로 당명을 ‘자유선진당’으로 고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명에 ‘선진’이나 ‘미래’가 들어가면 왠지 금방 없어져 버릴 군소정당 기분이 든다.)

그런데, 2월 1일 창당대회 당일 아침 이영애 변호사가 이 총재의 부탁으로 신당의 최고위원이 되기로 했다고 해서 끝난 것으로 생각했던 자유선진당과 관계는 이 변호사를 통해 다시 계속됐다. (김혁규 씨는 최고위원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알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노무현에 충성하다가 굴러 온 유재건 의원이 창당대회 사회를 보았다.)

이영애 변호사는 나를 비례대표로 같이 데리고 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상위권은 남여 공히 헌금 케이스가 될 것이란 이야기였다. 안전권은 기껏해야 6-7번이고 나머지는 장식물이니 자리도 별로 없는 셈이다. 사실 기획단 시절부터 그런 말이 있었고, 이정훈 교수가 창당준비위원이 된 것을 그렇게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했다.

그즈음 손상윤 최대집 박상학 등 이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제일 처음에 지지하고 나섰던 젊은 우파 동지들이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선진당은 그런 점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는 나를 원내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나는 그런 주장이 먹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당의 정책연구원장을 맡아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정당은 총선 후에 원내 의원들이 움직이는 것이라서 전혀 할 의사가 없다고 이영애 변호사에게 분명히 전했다. ‘잡탕 정당’에 무슨 정책연구가 필요한가 하고 속으로 웃어 버렸다.

3월 18일

그러던 중 3월 18일(화요일)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총재가 전원책 변호사에 전화해서 대변인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대변인 임명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신은경 씨와 전 변호사가 공동 대변인이 되었고, 대변인을 하던 이혜연과 지상욱은 공보특보가 되었고, 표학길 교수가 경제특보, 이흥주 씨가 정무특보로 임명됐다.

나는 이 인사를 보면서 그것이 이흥주 씨를 다시 불러들인 인사로 해석했다. 창당 후 당내에 자리를 잡지 못 했던 이흥주 씨에 보직을 주어 비례후보로 만들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 날 자유선진당의 조직국의 여직원이 전화를 해서 정책연구원장 임명장을 가져가고 당무위원회에 참석하라고 했다. 참으로 엉뚱한 일이었다. 우선 본인 동의도 없이 인사를 내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고, 여직원을 통해 임명장을 가져가라고 하니 이건 완전히 미친 장난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리로 나에게 인사치례를 해서, 입이나 막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잡탕 정당’에 정책연구원이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이 총재의 아들 정연 씨의 친구인 연세대 이정훈 교수가 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내가 연구원장인지 뭔지 하는 직책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3월 21일-22일

3월 21일(금요일) 오후 늦게 몇몇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자유선진당당 비례대표 앞 순위 후보가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알려 주었다, 실제로 그런 연합통신 기사가 있었다. 나나 전 변호사나 그 전날 마감된 비례후보 신청에 등록을 하지는 않았다. 비례후보는 지명권자가 연락을 해 주어야 신청하는 것이 상식이다. 들리는 말에는 전전날에 이혜련 지상욱 공보특보 등에게는 비례대표에 신청하라는 전갈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너무너무 좋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전 변호사는 하등의 전갈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22일(토요일) 저녁에 전 변호사를 통해 전날 연합통신 기사와는 전혀 다른 비례대표 후보명단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 변호사는 자기가 결국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침통하게 말했다. 대변인을 맡아 달라는 것은 “무료로 봉사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전 변호사는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 문제’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 변호사는 이 총재의 ‘진심과 진면목’을 몰랐던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정훈 교수와 지상욱 공보특보가 명단에서 빠지고 이혜연 공보특보가 당선권에 턱없이 모자라는 11번을 받은 것이다. 5년간 이 총재의 ‘시종’ 노릇을 한 지상욱, 부족했지만 대선 초기부터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한 이혜연, 이들은 모두 ‘배신의 눈물’을 흘리고 보따리를 쌌다. 이정훈 교수 부분은 진상이 밝혀지면 아마도 가장 흥미있는 사안이 될 것이다.

맺는 말

공식적으로 나는 1월 10일 이후론 자유선진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원도 아니다. 다만 이영애 변호사 때문에 이런 저런 말이 오갔고, 또 지난 15일에 대선 캠프 시절과 창당 기획단 시절에 정든 강삼재 최고위원의 양천 갑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을 뿐이다. (나와 이영애 변호사, 그리고 이 총재와의 관계에 대해선 추후에 다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개인 간의 사생활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알 권리가 있는 부분이다.)

손상윤 최대집 박상학 등 이회창 씨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지지선언을 해서 이 총재에게 ‘출마 명분’을 주었던 젊은 보수들은 ‘자유선진당 사태’에 대해 대단히 분개해 하고 있다. ‘정통보수’ 명분을 훔쳐간 이회창당(黨)이 어떤 심판을 받을 지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