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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예술선전대, 김정은에게 왜 중요한가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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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예술선전대, 김정은에게 왜 중요한가
 

15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인민군 제2차 군단예술선전대경연에 당선된 조선인민군 군부대들의 예술선전대공연을 관람했다”는 김정은의 행보를 전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은 “군단예술선전대들은 우리 당의 마이크와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 (군인들을)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로 더욱 철저히 준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작품 등을 더 많이 창작 공연하라”고 말했다 한다.

군단예술선전대란? 

군인신분의 예술인들로 조직되었고 군단(급)에만 있는 예술-선전단체이다. 북한군에는 25개의 군단(급) 예술선전대가 있고 이들 선전대는 다시 1부류와 2부류로 나뉜다. 

1부류에는 1, 2, 3, 4, 5군과 공군, 해군, 평양방어사령부, 참모정치부, 교도대지도국 소속 예술선전대가 속하며 2부류에는 4.25와 8.15훈련소, 108훈련소를 비롯한 기동타격부대들과 11, 12군단을 비롯한 지역, 지구사령부소속 예술선전대가 포함된다.

1부류선전대는 편제상 100~120명의 선전대원(연예병사)을, 2부류 선전대는 60~80명의 선전대원과 선전대 대장(상좌편제)이하 정치지도원, 작가, 연출가, 지휘자, 안무가, 후방지도원 등의 장교 편제를 가지고 있다.

여군과 남군의 비율은 각 군단선전대의 실정에 맞게 조율되며 대부분의 배우입대는 사회 예술단체나 예술전문대학에서 직접 초모의 방식으로 스카웃한다. 화술이나 창작 부문에서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는 전투병과의 남, 여 군인을 선발할 경우도 있으나 문자 그대로 특출한 재능만 인정받고 있다.

20대 초반의 배우지망생들이 군복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사회에서의 배우생활보다 빠른 노동당 입당이며 이것이 직접초모를 가능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인예술인답게 복장도 특이하다. 배우들의 계급은 사병계급에 속하지만 장교의 복장이 공급되며 물자공급기준은 비행사 바로 아래의 공급체계에 속해있다. 봉급도 예술급수에 따른 봉급을 받게 되며 군복을 입었지만 군사훈련보다 예술급수 판정과 그 준비가 우선이다.

1986년 김정일이 “군단선전대와 체육단이 물먹는 하마처럼 하전사(사병)들에게 돌아가는 물자를 먹어치운다”며 각 군 선전대와 체육단을 해산하게 했다가 2000년대 초 부활되기도 했다.

군단예술선전대의 역할 이번 김정은이 공연소감을 통해 군인들을 “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로 더욱 철저히 준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작품을 더 많이 창작 공연하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김 씨 왕조의 군인우상화교육이 첫 번째 임무이다.

그 외 군인생활과 군사훈련성과에 이바지 하는 작품, 혁명의식·계급의식을 높여주는 작품, 군민관계·관병일치·혁명적 낙관주의 등을 취급한 작품들을 창작해 군인들을 상대로 순회공연을 한다. 물론 부대가 공사나 농촌지원에 동원되었을 때는 ‘경제선동’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현장으로 나간다.

북한군 창건과 궤를 함께 하는 군단선전대는 6.25시기를 포함해 2년에 한번씩 군무자 예술축전(각 군단 예술선전대와 군인연환 공연)을 진행해 왔으며 이 군무자 예술축전은 선전대가 해산되었을 때에도 군단 내 재능 있는 군인들 위주로 열리군 했다.

군무자 예술축전과는 별개로 또 다른 2년을 기준으로 군단예술선전대 경연이 진행되는바 이는 일반군인들의 참여가 허락되지 않는 전문예술경연으로, 각 군단예술선전대의 이른바 예술축전이다.

이번에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제2차 군단예술선전대...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으로 보아 이 ‘선전대경연’이 한동안 정지되었다가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으로 된 후 다시 재개됐거나 아예, 선전대경연시점을 김정은의 등장에 맞춰 새롭게 적시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또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이 제2차 군단예술선전대경연에 당선된 부대 예술선전대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선전대경연은 1부류 군단과 2부류 군단선전대, 혹은 동, 서해 부대 선전대들의 지구별 경연 등을 통해 우수한 작품들이 걸러지게 되며 다시 인민군협주단과 인민군문예 창작실을 대동한 총정치국 심의를 통해 최종 선별된다.

김정은이에 선전대는 왜 중요할까 

김정일이 선전대를 해산했다가 다시 부활시켰던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김정은도 말 했듯이 “군단예술선전대가 김 씨 독재권력의 이른바 당위성과 업적을 부각시키는 마이크”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후반, 아직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 이름도 올리지 않았을 때 북한의 모든 군단선전대는 저들의 창작공연 작품들을 통해 ‘김정일 최고사령관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노래와 구호를 공식화 했다.

당시 김정일은 살아있는 김일성 앞에서조차 ‘우리의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합창하는 2군단 선전대의 합창을 보면서 “재네들 저거...여, 치호!(당시 군 선전부국장이었던 인물)이러면 안되지”했고 뒤에 가서는 “참가자들에게 나의 감사와 선물을 보내주라”고 명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4.25훈련소와 620훈련소 선전대가 무대에 올렸던 작품가운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 결심하시면 우리는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저 구호를 ‘당에서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로 바꾸어 전당, 전국, 전민의 구호가 되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일반시민들이 할 수 없는 말과 구호를 반은 군인, 반은 예술인이라 할 수 있는 군단선전대를 통해 ‘방송’해 온 것이다. 김정은 치하에서 렴철성 선전부국장이 뜨는 이유도 다른데 있지 않다.

4군단 산하 여단 정치부장 시절부터 4군단선전대의 작품 활동에 기여해온 렴은 이후 총정치국에서 일하면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라는 노랫말을 처음 만들어 냈고 각 군단 지휘부 정문에 “김정은동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도 내 걸게 했던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군 군인들조차도 “선전대는 돌격의, 당의 나팔수”라 말하고 있고 이를 김정은은 “우리 당의 마이크와 같다”고 재해석한 꼴이다.

선전대의 화려함과 씁쓸한 뒷면 

겉보기에 군복 입은 예술선전대원들의 모습은 화려하다. 어떤 연예병사들은 인민군협주단이나 중앙예술단체로 다시 스카웃되어 전문배우로 살아가기도 한다. 군복도 나름 화려하고 일반군인들처럼 배고픔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반 군인들처럼 열일곱, 열여덟에 군에 입대하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가 혹은 예술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는 저들은 ‘입당이 목적이어서 군복을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일반군인들보다 입당할 확률이 적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대체로 20살을 넘기거나 혹시는 20대 중반에 입대하기 때문에 입당을 못하고 제대 돼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은 단 하나, 여성의 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각 군 선전대의 공개된 비밀이다.

굳이 입당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더라도 군단소속 여배우들의 상급은 장군으로부터 선전대 지휘관들에 이르기까지 수두룩하며, 역대 최고사령관이였던 김씨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전력 때문인지, 인민군 내 성폭행과 성문화에 특별히 관대했음으로 북한의 여군들, 특히 여배우들의 아픔은 지금도 심각할 줄 안다.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