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김정은, ‘두 개의 독일’ 지향했던 ‘호네커’ 닮아가는 듯”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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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말하는 8·25합의와 남북관계

⊙ “심리전 무기를 갖고 있어야 對北협상에서 유리”
⊙ “대통령 혼자 지시하고, 아래에서는 그 지시에 따라서만 응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아태재단 강연 후 金大中과 만났을 때, “정말 對北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면
보수적인 사람 쓰라”고 충고
⊙ “金大中은 사회민주주의자 정도… ‘빨갱이’는 아니었다고 생각”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 이후 고조되던 남북 간 긴장이 지난 8월 25일 남북한 고위급 접촉의 합의로 일단 해소됐다. 김관진(金寬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洪容杓)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및 김양건 노동당 비서와 3박 4일간 회담을 벌인 끝에 북한 측으로부터 지뢰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을 이끌어냈다. 대신 우리 측은 지뢰도발 이후 재개했던 대북(對北)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이후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는 등, 언제 전쟁 위기로 치달았었느냐 싶게 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있다.
 
8·25합의 이후 우리 측은 마치 ‘승전(勝戰)’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對北)정책에 대한 찬사가 나오고, 김정은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북한군 고위 지휘관들을 문책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온다. 과연 이번 남북합의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북한 문제를 다루어 온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강인덕 전 장관은 “이번 일을 보면서 역시 원칙적인 입장에서 북한을 대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고 느꼈다”면서 “특히 심리전(心理戰)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리전의 중요성부터 얘기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시절에 두 차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심리전국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리전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었는지 이야기를 했다.
 
“心理戰은 우리가 가진 非對稱 무기”

 
지난 8월 25일 남북한은 지뢰도발 이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합의를 했다.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측 대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만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1974년 월남이 패망한 후, 박정희 대통령은 특수홍보대책위원회라는 걸 만들었어요. 월남 패망 때문에 패배의식이 국민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구였죠. 유혁인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위원장을, 당시 중앙정보부 북한국장이던 내가 실무를 맡았어요. 민심이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매일 아침 11시와 오후 5시 두 차례 서울 명동 암시장에 나가서 달러와 금(金)의 시세를 체크했어요. 3개월쯤 지나니까 떨어지더군요. 박정희 대통령께 ‘이제 안정이 됐습니다’라고 보고드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럼 이제부터는 대북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7·4공동성명 이후 없어졌던 심리전국을 재건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국장으로 있으면서 심리전국장을 겸무했지요. 그때 심리전에 대해 상당히 많이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났어요.”
 
강 전 장관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이념을 바꾸지는 못해도 혼돈·동요를 가져오게 하는 게 심리전 작전”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이번에 심리전을 쓰긴 했어요. ‘48시간 내에 대북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타격하겠다’고 한 것은 심리전에서 말하는 ‘예고작전’입니다. 휴전선 인근 거주자들이 피란을 하고, 섬 주민들이 방공호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사재기 같은 동요 현상은 없었어요. 그걸 보면서 북한의 심리전이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 전 장관은 “핵무기, 특수부대 등이 북한이 갖고 있는 비대칭(非對稱) 무기라면, 북한이 갖지 못한 우리의 비대칭 무기는 심리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박상학씨 등이 북한에 삐라를 날려 보내는 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꼭 평양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돼요. 휴전선 너머 20~30리 정도만 날아가도 돼요. 압록강이나 두만강 건너로도 소식이 들어가고, 평양에도 어떤 식으로든 소식이 들어갑니다. 제일 소식이 안 들어가는 곳이 휴전선 지역입니다. 삐라는 전선(前線)의 인민군을 흔드는 가장 좋은 심리전 무기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삐라가 인민군들에게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요.
 
“나는 지금 북한에서 제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게 인민군이라고 생각해요. 6·25 때 국민방위군 사건이라고 있었잖아요? 전시(戰時)에 장정들을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해 놓았더니, 지휘부가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식량이나 물자를 떼먹었다가 처형된 사건….
 
지금 북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장성택이 처형된 것은, 군부에서 ‘장성택이 석탄을 중국에 13억 달러어치나 팔아먹었다. 그 바람에 인민군들이 얼어 죽을 뻔했다’고 불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인민군들의 처지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삐라나 확성기 방송이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입니다.”
 
강인덕 전 장관은 “오래전부터 ‘심리전을 꼭 재개해야 한다. 심리전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어야 대북협상에서 유리한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심리전을 중단했다가 재개했는데, 좀 더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北도발은 低强度
 
지뢰도발 이후 남북한이 전쟁으로 치닫는 듯하다가 8·25합의로 위기가 해소됐습니다. 혹시 북한이 박근혜 정부를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요
 “나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북한에 비가 안 와서 옥수수가 완전히 전멸을 당했다고 합니다. 북한으로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미국·중국과의 관계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기댈 곳은 우리밖에 없는 거죠.

이번 도발은 예상보다 훨씬 약한 저강도였습니다. 저강도 도발을 통해서 긴장을 조성하고,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여론이 일어나면 황병서와 김양건을 앞세워 대담한 제안을 하면서 대화 의지를 만천하에 표명, 우리가 끌려들어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겠지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이죠. 옛날이랑 조금 상황이 다른 것은 우리가 강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북쪽이 꺾이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대화에 응해 왔다는 점이죠. 그러니 대화를 주장해 온 우리로서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고….”
 
앞으로 남북대화가 어떻게 전개될까요.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하면서, 식량보다는 비료 같은 걸 요구해 올 것입니다.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내년에는 총선, 후년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조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빨리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면 많은 것을 줘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그걸 노리겠지만, 대통령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1987년 이후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대부분 임기 중반 이후 레임덕에 빠지고 지지율이 하락할 때쯤이면, 그걸 남북관계를 통해 만회하려고 들더군요.
 
“대통령은 누구든지 역사에 뭘 남기고 싶어 하기 마련이죠. 그중에서도 통일 문제에 큰 공로를 세웠다는 걸 역사적 공적으로 남기기를 원할 겁니다. 그런데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북쪽과의 관계를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어요. 신뢰구축을 중심으로 접근하겠다고 하는데, 신뢰구축의 내용이 뭔지, 대통령의 구체적인 대북정책 방안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과거 노태우 정권 때는 김종휘씨, 김대중 정권 때는 임동원씨, 노무현 정권 때는 이종석씨 같은 외교안보 사령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도 안 보입니다.
 
“대통령 혼자서 지시하고, 아래에서는 그 지시에 따라서만 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순한 행정관료여서는 안 됩니다. 전략적인 사고(思考)를 가지고, 대통령의 철학,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북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안(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북측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대담한 접근을 해온다면? 그때그때 제안을 받은 후에 생각을 해보고 대책을 세운다? 북측이 어떤 제안을 해올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있는지, 그게 불안합니다. 통일준비위원회 같은 데서 그런 일을 하나요?”
 
“북한이 ‘평양시간’ 정한 것 예사롭지 않아”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
통일준비위원회에서 통일의 큰 그림, 원칙을 세워줬으면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DMZ 평화공원 같은 얘기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통령도 자꾸 DMZ 평화공원 얘기를 하는데, 그게 될까….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제외하면 군사력 면에서도 우리보다 열세(劣勢)입니다. 김정은으로서는 휴전선을 오픈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김정은이 과거 동독의 호네커를 닮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네커의 어떤 면을 말씀하는 건가요.
 
“1968년 이후 동서독 간의 힘이 기울어지면서, 호네커는 ‘두 개의 독일’ 정책으로 선회합니다. 게르만민족이 두 개의 독일 국가를 세웠다, 이제는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자는 주장이었죠.”
 
강인덕 전 장관은 “북한이 서울과 다른 ‘평양시간’이라는 새로운 표준시(標準時)를 설정한 것이나, 이번 남북접촉 과정에서 ‘대한민국 청와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등이 예사롭지 않다”면서 “김정은이 남과 북을 완전히 ‘두 개의 국가’로 생각하는 바탕 위에서 (체제)방어전략을 세우려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지금까지처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휴전선은 국경선이 되는 것이고요. 휴전선이 국경선화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휴전선 공동개발이 가능할까요?”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남과 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냉정해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확실히 북한의 대남공작이 줄어들고, 국내 종북(從北) 세력의 사기가 떨어지기는 할 것입니다. 문제는 주변국가예요. 그들이 통일된 한국보다 분단된 한국을 더 선호한다고 하면, 우리가 ‘통일정책’을 펴는 것은 더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또 그렇게 되면 북한은 미국에 평화체제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강인덕 전 장관은 “그런 의미에서, 남북문제를 이야기할 때,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북한이 문을 닫아걸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삼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 나는 ‘통일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통일로 가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대만에 가서 보니, 1년에 대륙에서 대만으로 오는 사람이 350만명, 대만에서 대륙으로 가는 사람이 500만명이라고 합니다. 대륙에서 대만으로 시집 온 여자가 30만명이에요. 대만의 예비역 장군들, 심지어는 장징궈(蔣經國) 전 대만 총통의 오른팔이었던 사람도 은퇴하고 난 후 대륙의 고향에 가서 몇 달씩 지내다가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통일된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요?”
 
강인덕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북한국장, 심리전국장, 남북대화사무국장 등 북한 관련 요직을 역임했다. 1980년부터는 KBS 사회교육방송을 통해 ‘북한노동당 간부들에게’라는 제목의 심리전 방송을 했다. 이 방송은 1998년 2월 그가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入閣)할 때까지 계속됐다.
 
金大中과의 인연

 
1998년 11월 19일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한 강인덕 장관.
어떻게 해서 김대중 정부에 통일부 장관으로 들어가게 됐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태재단을 할 때,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아주 보수적인 입장에서 김일성의 대남(對南)전략을 중심으로 해서 통일정책 강의를 몇 번 했어요.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이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더군요. 그때가 (김영삼 정부 시절) 한완상(韓完相)씨가 통일부 장관을 할 때였어요. 그는 자기가 ‘진보인사’니까 북한과 뭔가 대화가 될 줄 알고, 이인모를 북한으로 송환하고 그랬어요.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말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면 보수적인 사람을 써야 한다. 그래야 국내에서도 그가 하는 일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그런 보수적인 사람이 나오면 타협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반면, 진보적인 사람이 나오면 통일전선의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아마 그때 한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강 전 장관은 통일부 장관 제의를 수락한 것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IMF사태입니다. 그건 대북전략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어요. 내정(內政)이 안정되어야 외정(外政)도 잘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장관이 되던 해 통일부 연찬회에서 나는 ‘IMF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진전될 수 없다. IMF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정이 안정되어야 한다. 내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휴전선에 포탄이 한 발이라도 떨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어요.
 
다른 하나는 간여(Engagement)정책입니다. 젊어서부터 북한의 대남전략을 완화시키려면 간여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이었습니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간여정책을 통해 저 체제에 구멍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金大中, 네오마르크스주의보다는 조금 오른쪽…”
 
막상 가서 보니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평소 생각하던 간여정책과 같은 것이던가요.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때는 아니었어요. 원래 나는 햇볕정책 비판론자였습니다. ‘햇볕을 쪼이면 외투를 벗는다고 하는데, 북한이 정말 옷을 벗을 줄 아느냐’고 비판했습니다.
 
햇볕정책은 너무 앞질러가는 것이었어요.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 ‘이렇게 하면 북한이 변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너무 모험적인 정책을 편 것이 문제였습니다. 정상(頂上)회담과 관련해 돈을 보낸 것도 문제고….”
 
왜 그렇게 무리를 한 것일까요.
 
“노벨평화상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항상 용공(容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평생 공산주의를 연구한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이념적 좌표는 어땠다고 보십니까.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요? 프랑크푸르트 학파, 즉 네오마르크스주의보다는 조금 오른쪽….
 
젊어서 백남운 등이 했던 마오쩌둥주의 정당인 신민당을 했다고 하잖아요? 젊은 시절 그랬던 영향은 오래가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서도 그런 걸 느끼는데, 그분이 임기 말에 독도에 간 것은 젊은 시절 6·3세대로서의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야당 생활을 오래하면서 체제 개혁적인 생각을 갖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뭔가 잘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건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반공주의자이면서도 취임사에서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했잖아요? 이런 건 옛날에 야당을 한 분들에게는 공통적인 정서 같아요. 하여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우리가 말하는 ‘빨갱이’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출처 | 월간조선 2015년 10월호 | 배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