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좌파정부의 건국 궤변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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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임시정부수립이 건국이라면, 1948년 이래 한반도의 유일합법국가임을 자타가 공인한 대한민국은 69년 전에 이미 통일을 달성했다는 말인가.] 최성재

세계사적으로 독립국이 양산된 시기가 세 번 있었다. 열강(列强 powers)의 재편 과정에 따른 역사적 혜택이 여러 독립 국가의 건국이었다.

첫째는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점령하자, 이베리아의 학정에 300년 시달리던 중남미에서 1820년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독립국이 탄생했다. 독립 영웅 볼리바르 100명이 뭉쳤더라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건재했다면, 독립은 어림도 없었다.

둘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하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1920년대에 유럽과 중동에서, 옛 오스트리아와 옛 터키 땅에서 우르르 독립국이 탄생했다.

셋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역시 미국이 승리하자, 1945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우후죽순처럼 독립국이 탄생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독립국가가 이때 탄생했다. 승전국인 프랑스와 영국도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1991년 소비에트로부터 14개 국가가 독립한 것은 열전(hot war)이 아니라 냉전(cold war)의 결과였다. 그것은 미국의 핵폭탄이 아니라 레이건의 핵주먹에 지레 질린 고르바초프가 링에 오르기도 전에 흰 장갑을 던진 덕분이었다. 반면에 누구도 승복할 수 없었고 힘도 고만고만했고 강대국도 사실상 관망했기 때문에, 별로 크지도 않던 유고슬라비아는 끔찍한 내전 후에 민족과 종교의 경계선에 따라 6개인가 7개의 나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강남의 어느 엄친아 노총각 잔칫날에 웬 ‘목포의 눈물’을 부르듯이, 김대중 정부가 생뚱맞고 청승맞은 신파조로 뜬금없이 ‘제2의 건국’을 자작곡으로 부르더니, 문재인 정부는 1919년 건국에 힘차게 대못을 박는다. 대못은 대못인데, 그것은 역사의 현판(懸板)이 아니라 자기 발등에 박는 대못이다. 엄청 아플 건데, 그들은 특이체질인지, 아님 양력 8월 15일을 음력 8월 15일로 착각했는가,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감격한 언론과 포털은 여기저기서 추임새를 넣는다. 한국의 역사학계를 평정한 민중사학은 꽹과리를 치고 날라리를 분다.

붉은 군대의 제25군 12만 5천 명이 일본군 8만 3천 명 중 1만 2천 명을 사살하고 평양에 입성한 것은 1945년 8월 26일이었다. 김일성이 꺼삐탄(대위) 신분으로 88특별여단 소속 조선인 50여명과 함께 원산항에 상륙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1945년 9월 19일이이었고. 제25군 사령관 치스치아코프(Chischakov) 대장에게 김이르센은 여러 충복 중 한 명에 불과했다.

1941년에 중국인(100명)과 러시아인(40명)과 조선인(60명) 총 200명으로 급조된 88특별여단 중에서 이때 들어온 50여 명은 정통 공산주의자 허가이 등의 소련파(250여 명)에 비하면 공동묘지의 도깨비불처럼 희미한 존재였다. 1948년 소련군이 철수한 후 모택동이 6.25사변 전까지 들여보낸 5만 정병(精兵)을 이끌던 김두봉 등 연안파에 비하면, 정체불명의 김일성 일당 만주파(또는 빨치산파) 50명은 숫제 보름달 앞의 촛불이었다.

‘민족의 해방자 쓰딸린 대원수 만세’, ‘민주주의조선 완전독립 만세’, 이것은 1946년 8월 15일에 평양 제4 여자중학교 교문을 가슴 벅차게 장식하던 감사의 표현이다.

(이상 참조: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2008; 김학준, 북한50년사 1995)

아첨과 술수에 뛰어났던 기회주의자 김일성이 일인 독재체제를 확립한 후에 역사는 완전히 날조되었다. 김일성 대원수가 100만 일본군을 솔방울과 우박, 구름과 비, 폭풍과 진눈깨비로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시켰다고 가르친다. 증거가 있단다! 높은 산 깊은 골짜기 어디에나 구호나무에 김일성의 백전백승 항일투쟁이 새겨져 있단다. 여기에 고개만 갸우뚱거려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고문과 기아로 삶을 마감해야 한다. 연좌제에 따라 3대가 함께! 이처럼 3대 세습은 3대 처형과 동전의 앞뒤처럼 짝을 이룬다.

한국인의 끈질긴 독립정신은 분명 높이 사야 한다. 죽어도 항복 않는 한국인은 어떤 의미에선 일제하 2천만 전체가 독립 운동가였다. 그러나 100년도 안 된 역사를 5000년 전의 신화로 둔갑시키면 안 된다. 그러면 다시 큰 위기가 왔을 때, 이불 킥만 하다가 또 다시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게 된다. 상해임시정부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 위치부터 제국주의 프랑스의 상해 조계(租界)에 있었다. 그곳은 프랑스가 병든 사자 중국으로 강제로 빼앗은 땅이었다. 사실상 식민지였다. 거기는 중국도 일본도 감히 들어갈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임시정부는 일본과 똑같은 제국주의자에게 빌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궁색하게 골목 하나 겨우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으로 장개석의 말처럼 100만 군대도 못할 상해의거를 만방에 떨치던 그해, 왜놈의 장군들을 정의의 폭탄으로 심판했던 통쾌한 그해, 임시정부는 장개석의 값싼 동정에 기대어 정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하면서 프랑스든 영국이든 미국이든 쫓아내 버렸던 것이다. 유럽 제국주의의 짝퉁 베르사유궁궐 처마 아래서 이어가던 초근목피 곁방살이조차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약 없는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다. 한 곳에 1년을 머물면 다행이었다.

당시 임시정부가 얼마나 가난했던지 김구 주석은 도시락 폭탄 하나 구입하려고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손목시계를 팔아야 했다. 무슨 말인가. 국내서 독립자금 보냈다는 것 99% 거짓말이었다는 말이다. 해방 후 생긴 정당이 400개가 넘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독립운동가를 자처했다. 아마 그중에 99%는, 요즘도 가끔 불우이웃성금 걷어서 호화호식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있듯이, 독립자금이랍시고 기부 받거나 빼앗아서 중간에서 착복했을 것이다.

한국이나 북한이나 현재, 일제(日帝)를 몰아내는 데, 99.99% 공은 미국의 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저 치열한 태평양 전쟁으로, 마지막에는 핵폭탄 두 방으로 조선은 꿈보다 더 꿈같은 무지개 현실을 맞이했다. 해방을 그냥, 그냥, 그냥 선물 받은 것이다.

그것은 흥부의 대박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의뭉한 스탈린은 끝까지 관망하다가 두 번째 핵폭탄이 터진 1945년 8월 8일 정오에서 12시간 지나서 만주와 북한을 양 주머니에 손 넣고 휘파람 불며 건들건들 접수하러 나섰다. 이미 원자탄 두 방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던 관동군 70만, 그들은 두 배의 군대와 다섯 배의 무장(武裝) 앞에 두 손 두 발 하늘로 쳐들기 바빴다.

스탈린은 그렇게 어부지리를 차지한 것이다. 기껏 남이 다 차려놓은 잔칫상에 재빨리 젓가락을 얹는 데 그치지 않고 차린 상들의 절반을 주인이 오기 전에 깡패를 동원하여 강탈해 버린 것이다. 스스로의 힘이 전혀 없던,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힘이 전혀 없던 무주공산 조선은 그렇게 졸지에 분단국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북한의 공산왕조 못지않게 한국의 좌파정부는 하늘같은 미국의 공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다. ‘반미 좀 하면 어때’란 말은 ‘반미가 곧 오늘의 독립운동이요, 내일의 통일운동’이라는 386운동권의 본심을 최대한 책 안 잡히려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매년 8월 15일에는, 광복절(1945.8.15.)이자 건국절(1948.8.15.)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반쪽짜리 나라에서, 먼지와 거지의 나라에서,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8대 선진강국으로 우뚝 선 조국에 감사하고 ‘파라다이스 코리아’를 자랑하고 뿌듯해 하고, 그제는 일제(日帝)를 물리쳐 주고 어제는 공산 소련과 공산 중국과 공산 북한의 야욕을 분쇄해 주고 오늘은 공산왕조의 핵과 미사일에서 자유대한을 지켜 주는 미국에 감사함이 마땅하다. 혈맹답게 엉클 샘의 손을 굳게 잡고, 한반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함께 도모함이 마땅하다.

그러면 경제든 정치든 안보든 문화든, 대한민국은 성숙한 국가로서 머잖아 G7에 이은 G8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준비된 나라 대한민국에 자유통일은 어느 날 넝쿨째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19대 대통령은 도리어 미국을 향해, 트럼프를 향해, 98일간 잔뜩 벼렸던 듯이 노골적으로 민족의 칼날을 세웠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천방지축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키는 꼴을 절대 못 봐 주겠노라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개척하겠노라고, 또랑또랑 ‘한반도’의 독립선언을 만방에 고했다. 평화, 평화, 평화, 평화를 스무 번이나 외쳤다.

임진왜란 1년 전, 선조가 주재한 어전회의에서 끝장토론이 벌어졌다. 결론은 평화, 평화, 평화, 평화! 만에 하나 모르니, 성벽을 보수하고 무기를 정비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자는 선견지명의 충언은, ‘쓸데없이 불안을 조성하고 두루 민폐를 끼친다.’는 평화론에 모깃소리보다 가늘어졌다.

사드 반대, 탈원전, 군복무 18개월(북한은 10년)로 단축, 400여년을 건너뛰어 기시감이 드는 건 웬일일까.

(2017.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