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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바보 논쟁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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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 선악(善惡)의 칼날이 무차별로 생사람의 생명줄을 겨누고 있다.]/최성재

중국 안휘성에 유명한 바보가 있었다. 얼마나 유명했으면 그의 유일무이 은인 등소평의 입에 10여년에 걸쳐 공식석상에서 3번이나 언급되었다. (자료에 따라 앞의 두 연도는 일치하지 않고 마지막 연도인 1992년은 일치한다.) 아니, 등소평의 입에 올랐기 때문에 연광구(年廣九 또는 年廣久)는 10억 인의 입에 10여년 동안 오르내렸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그는 바보는 바보인데 졸부로서, 악덕 자본가로 백인(百人)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만인(萬人)의 부러움을 샀다. 기소되어 감방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자기 이름 포함하여 다섯 글자밖에 모르는 바보가 돈 버는 데는 귀신이었다. 아버지 바보를 일찍 여윈 아들 바보는 때마침 불어온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입안에 짝짝 달라붙는 ‘바보의 해바라기 씨(傻子瓜子)’를 팔아 폭리를 취한 악덕 자본가로, 취업을 미끼로 여직원을 10명이나 성폭행한 파렴치범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바보답게 그는 판사의 심문을 듣자마자 정색을 하고 바로 정정했다.

“10명이 아니라 12명입니다. (이왕이면 한 다스는 채워야지.)”

1992년 바보는 등소평의 빽으로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천안문 사태(1989) 이후 중국이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던 그해, 등소평이 3년의 침묵을 깨고 남순강화((南巡講話)의 길에 올랐다. 수만 리 여정 내내 잔뜩 굳어 있던 등소평의 얼굴이 심천의 길거리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대하는 순간 환하게 펴졌다.

“바보는 등소평이 심천에 시찰하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傻子欢迎邓小平到深圳视察)!”

“우리 바보가 사업을 여기까지 확장했구먼, 허허(傻子都做到深圳来了,不错).”

바보 본인의 말에 따르면, 2013년 현재 그의 사업은 매출이 20억 위안(약 340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본가의 기준이 무얼까? 이것이 대륙을 10년간 달군 화두였다. 정답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나와 있었다. 마르크스는 고용주가 8명 이하를 고용하면 자본가가 아니라고 했다.

Damit er nur doppelt so gut lebe wie ein gewöhnlicher Arbeiter und die Hälfte des produzierten Mehrwerts in Kapital zurückverwandle, müβte er zugleich mit der Arbeiterzahl das Minimum des vorgeschoßnen Kapitals um das Achtfache steigern. (그가 단지 일반 노동자보다 두 배 정도 잘살려고 한다면, 그래서 생산의 잉여가치 중 절반을 재투자하기로 한다면, 그는 고용인의 숫자와 장차 투자할 최소 자본을 똑같이 8배로 올려야 할 것이다. --[자본론] 1권 3편 11장-- *[격탕 30년]에는 9장으로 나와 있는데, 11장이 맞음.)

마르크스는 단순한 계산이라 생각하여 식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잠깐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고용인 1명이 잉여가치 중 4단위를 가져가고 고용주가 그 2배인 8단위를 가져간다고 하자. 마르크스는 노동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못 박았고, 그에 따르면 그 시간이 곧 잉여가치이므로 고용인 8명의 총 잉여가치는 64단위이다. 그런데 고용주는 자본가가 아니므로 그도 노동에 참여한다. 따라서 그 사업체의 총 잉여가치는 72단위이다. 노동자는 그중 절반인 32단위(4×8=32)를 가져간다. 고용주는 8단위를 가져간다. 이제 총 잉여가치 72단위 중에서 32단위가 남는다.

72-(32+8)=32

이 나머지 32단위가 재투자된다. 그러니까 고용주는 자기가 생산한 잉여가치 8단위를 고스란히 가져가고, 고용인이 생산한 것은 절반은 가져가고 절반은 재투자된다. 따라서 노동자의 잉여가치는 재투자될 뿐 한 푼도 착취되지 않는다.

1979년 등소평의 중국 공산당은 개인 소유의 상공업(個體工商戶)을 허가하기에 이른다. 그해 천덕꾸러기 연광구는 기술을 어디서 익혔는지 모르나 웃통을 벗어젖히고 해바라기 씨를 기가 막히게 맛있게 볶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한다.

부자 2대에 걸쳐 이름보다 자주 불리던 ‘바보’를 상표화한 것도 바보의 해바라기 씨가 불티나게 팔리게 한 비결이다. 곧 문제가 발생한다. 순식간에 고용인이 12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독실한 마교(마르크스교) 신도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고용인 9명부터는 자본가다! 맞다, 에이, 바보가 무슨 자본가? 그럼 유일신 마르크스가 틀렸단 말인가, 모택동도 등소평도 유일신으로 떠받드는 마르크스가 틀렸단 말인가, 죽여라, 악덕 자본가!

마침내 등소평도 시중의 바보 논쟁을, 자본가 논쟁을 듣게 된다. 그 시점이 1980, 1982, 1983 제각각이다. 바보 연광구에 따르면 1980년이라고 한다. 하여간 10억 인의 대논쟁은 1982년까지 계속되는데, 그때는 이미 등소평의 귀염둥이가, 쥐 잘 잡는 검은 고양이가 종업원 105명을 거느린다. 1982년(또는 1983년) 내공이 세 갑자에 달한 거인 등소평이 공식적으로 바보 연광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잠시 내버려두고 지켜봅시다(姑且放一放,看一看).”

다들 입이 쑥 들어갔지만, 등소평의 말씀이라 공개 석상에서는 떠들지 못하고 뒤에서는 계속 쑥덕거린다. 빈둥빈둥, 공산당의 권력과 공산주의의 이론을 이용하여 호의호식하는 자들일수록, 악덕 자본가보다 더 악독한 자들일수록 쑥덕공론이 심하다. 그 사이 비능률적인 공산당 소유의 기업을 능가하는 개인 소유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연광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엄청난 사영 기업들이 노동이 아니라 기술과 경영을 앞세워 승승장구한다.

이미 1979년에 수백 명을 고용한 사영기업(私營企業)이 개혁개방의 선구자 광동성에만 해도 숱하게 있었다. 고용주도 고용인도 나날이 늘어나는 살림에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공산당이 살아 있는 신으로서 눈을 부라리는 계획경제, 그것이야말로 리바이어던임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쟁력 있는 생산자와 분별 있는 소비자 그리고 신용 있는 판매자가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작은 선과 큰 선의 아름다운 경연장임을 10억 중국인은 본능적으로 직관적으로 몸으로 직접 터득하기 시작했다. 탁상공론적 제로섬 게임의 분배 대본이 연출한 30년 유혈낭자 죽의 장막이 걷히고 이제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는 윈윈 게임의 막 뒤로 총천연색의 광대무변한 무대가, 누구나 대본을 쓸 수 있고 연출할 수 있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 세상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리카르도가 깃발을 들고 마르크스가 성역화한 노동가치설은, 잉여가치(부가가치)는 노동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노동가치설은 단순무식한 말장난임이 개혁개방의 현실에서 입증된다. 소규모의 사영기업이 대규모의 공영기업을 능가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뻔히 보인다. 노동생산성도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실은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동일한 장소, 동일한 도구로도 8시간 동안 1단위밖에 생산 못하는 자도 있고 16단위를 생산하는 자도 있다. 하물며 혁신적인 생산설비를 갖춘 노동자와 구닥다리 생산수단으로 생고생하는 또는 헛고생하는 노동자와 비교하면, 예를 들면 박정희의 포항제철과 모택동의 뒤뜰 용광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비교하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난다. 1천 명이 생산한 강철 100만 톤은 5억 명이 두들겨 낸 선철 1억 톤과도 안 바꿔준다.

자본가 논란은 마침내 1992년에 종식된다. 평소에는 서양장기를 두거나 월드컵 경기를 수십 번 되돌려 보거나 기형의 발톱을 깎는답시고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석 달 열흘 빈둥거리다가, 1년에 한두 번 나타나 큰 것만 한두 개 짚어주는 등소평이 바보 연광구를 사면함으로써, 칭찬함으로써 10억의 만만한 바보 때리기는 종식된다. 등소평이 처음부터 의도했는가는 모르지만, 10년을 끈 등소평의 ‘지켜보자’는 그 한 마디는 큰 혜안이었음이, 신의 한 수였음이 입증된다. [자본론]의 그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다들 덮어버리는 것으로, 야오밍의 손도 닿지 않을 높은 선반에 그냥 고이 모셔 두는 것으로 싱겁게 실은 아름답게 매듭짓는다.

문재인 정부는 노조와 시민단체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늘처럼 떠받든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법 위의 법이다. 최상위 권력집단이다. 대통령도 갈아치울 수 있고 헌법재판관도 대법관도 신상 털기 신공(神功)으로 수족처럼 부린다. 그들이 여론몰이에 나서면, 구속영장의 실질심사는 요식 행위에 그친다. 검사의 구형과 판사의 선고형은 그들의 헛기침 지침으로 결정된다. 문재인 정부는 응답률 2~3%의 여론조사를 후광 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두 집단이 한 목소리로 평소에 주장하던 바를 쏟아낸다.

상위 10% 노동자 집단이 결성한 노조(노조 결성율 10%)는 평균 연봉이 약 1억 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들은 노동자 평균 임금의 두 배를 초과하여 받으므로 전원 자본가다. 악덕 자본가다. 이름만 노동자일 뿐이다. 한국의 노조 지도자는 대기업의 이사 정도는 상대도 않는다. 그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면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 방송과 신문과 포털은 그들의 선전포고를 다투어 퍼 나른다. 경찰은 그들에게 얻어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정치인은 그들에게 눈도장 찍히는 것을 첫사랑으로부터 눈웃음 선물 받는 것처럼 황홀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언젠가부터 시민단체와 어깨동무하고 경제집단이나 사회집단을 넘어 정치집단으로 변했다. 그들은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고충을 모른다. 그들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파업하고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이 올라간다. 해고에서도 자유롭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업체에게 떠넘겨진다. 그러나 배부른 그들은 외친다. 좋은 말은 다 외친다.

비정규직 제로, 완전 고용, 최저임금 1만 원, 골목상권 활성화, 농업 만세, 재벌 해체, 거대 유통업 강제 휴무(외국 업체는 예외), 갑질 그만, 보편적 복지 실현, 공무원 대폭 증원, 세무조사, 친환경, 죽여라, 살려라!

그러나 이것들은 상호모순으로 가득 찬 달나라 이야기다. 달님도 선한 목자인 양 앵무새처럼 따라서 외치지만, 생각할 시간도 안 주고 밀어붙이지만(등소평은 자기도 잘 모르겠으니까 10년의 시간을 주며 생각해 보자고 했다만), 방방곡곡에 악의 붉은 딱지를 더덕더덕 붙이고, 눈에 쌍심지를 켜지만, 그럴수록 해결이 점점 어려워진다. 부자의 회개가 아니라 빈곤층의 이전투구를 낳을 뿐이다.

이미 공공기업부터 비정규직을 없앤다며 신입사원은커녕 인턴조차 아예 안 뽑는다. 고작 평균 연 소득 2천만 원밖에 안 되는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이면, 연간 500만 원 소득이 감소한다.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실업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경제활동인구의 30%나 차지한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기업도 해외로 나가거나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접어야 한다. 이미 노동자 1인의 총비용이 월 평균 493만 원이다. (그중 직접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것은 평균 394만 원이다.) 대기업은 704만 원, 중소기업은 388만 원이다.

소득 대비 임금이 우리나라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잘 나가는 독일을 능가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이 잘 나가는 것은 좌파인 슈뢰더의 개혁 덕분이다. 그는 권력을 잃었지만 국가를 살렸다.

슈뢰더는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노조에 맞서서 노동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비정규직을 활성화했다. 날로 먹는 복지는 확 줄였다. 메르켈은 우파로서 좌파 정권이 물려준 정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받들어 모셨다. 덕분에 누구보다 정권을 오래 유지하고 있다. 벌써 12년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상대적 호황으로 한층 나긋나긋해진 독일 국민을 품고 있다. 통일 수상 콜의 16년 집권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2017.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