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판문점의 ‘기억상실’ 유령 … 북한 민낯은 변치않는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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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남북관계가 과열이다.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 한 마디에 우리 정부는 북새통이 됐고, 어제는 판문점에 회담 테이블이 차려졌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문제와 함께 여러 남북 현안이 봇물을 이루며 장밋빛 전망이 번진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 찜찜한 느낌이 남는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정말 개과천선한 것일까. 회담장 웃음 속에 가려진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북한 대표단은 9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걸어 넘어왔다.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당국 대화를 위해서다. 북측 단장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비롯한 일행이 건너온 곳 몇 걸음 옆엔 AK-74 총탄 자국이 선명한 소나무가 서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가 탈북·망명 때 추격조가 남측 지역까지 침범해 총격을 가한 흔적이다. 죽음을 무릅쓴 탈출극 현장은 불과 58일 만에 남북 화해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듯 아무도 지난 일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판문점에서 잊혀진 건 오씨 만이 아니다. 4년 넘게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이 북한에 잡혀있다. 이들 가운데 선교사 3명에게 북한은 무기노동교화형을 내렸다. 미국 등 제3국 국적인 경우 협상을 통해 돌려보낸 것과 차이가 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며 민족 화해와 단합을 강조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우리 회담 대표단은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혹한의 고통과 공포·질병에 시달릴 억류 인사들은 북한 당국보다도 대한민국 정부를 더 원망할지 모른다.

연일 ‘서울 핵 불바다’를 위협하던 김정은의 성난 얼굴도 지워졌다. 핵 탄두 모형과 탄도미사일을 자랑하며 대남타격 엄포를 놓던 그의 언동에 우리 국민은 전쟁공포까지 겪었다. 청와대 모형 건물을 지어 대남 특수부대의 기습침투와 대통령 납치 훈련을 벌이면서 김정은은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며 채근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한 우리 군 당국을 책망하던 일부 친북·좌파 성향 인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다. 그가 대한민국을 ‘적(敵)’이라고 지칭하며 호전적 극언을 퍼붓자 주적 반대 주장은 설 땅을 잃었다.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8월엔 한국 언론이 김정은 체제 비판 도서를 소개했다며 신문기자 2명과 해당 언론 사주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북한 중앙재판소가 판사 등을 동원해 궐석재판을 벌이고 관영매체로 결과를 알리기까지 했다. 책을 쓴 영국 시사주간지 기자 등에 대해선 아무 언급 없이 서평을 쓴 한국 기자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 북한은 “임의의 시각·장소에서 즉시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언론인 살해 위협이다.

이처럼 산 같이 쌓인 북한의 적폐를 두고 진정한 남북화해와 관계 진전을 이루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바닥을 들여다본 우리 국민들의 대북감정은 싸늘하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닌보살하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건 볼썽사납다.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동족 간의 불화와 반목을 격화시키는 행위들은 종식돼야 한다”는 북한 신년사도 생뚱맞다. 그런데도 반색하며 버선발로 달려나가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 쏟아지는 국민 우려를 대통령과 정부는 제대로 읽어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참가에 거부감을 갖거나 딴지 걸 이유는 없다. 김정은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 건 나름 평가해줄 대목이다. 국제스포츠 행사 주최국으로서 북녘 동포 선수와 방문단을 따뜻하게 맞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타고 올 크루즈 선박을 보내주겠다’거나 ‘가능한 많이 와달라’며 야단법석을 하는 건 피했으면 한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다.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한창이고, 문재인 정부도 그 필요성에 공감해 독자제재에 피치를 올려왔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채 올림픽 축제분위기에만 도취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제재국면을 절감한 북한 대표단이 김정은에게 ‘평창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올림픽이 이후다. 38일간의 ‘올림픽 휴전’이 3월18일 끝나면 북한은 대남 청구서를 내밀 공산이 크다. 올림픽 때문에 연기된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아예 축소·중단하거나, ‘민족 내부 문제’ 운운하며 한·미 공조의 간극을 벌이려 들 것이다. 평창 참가에 대한 호응조치로 9월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에 ‘남조선 축하단’을 보내달라는 선동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신년사가 평창 올림픽과 함께 북한 9·9절을 올해 ‘민족적 대사’로 규정한 건 이런 포석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북한 신년사를 꼼꼼히 다시 읽었으면 한다. 행간의 의미를 간파하면 더 좋다. 거기엔 ‘평창’보다 앞서 ‘핵 버튼’이 있고,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대량생산과 실전배치 지시가 담겨 있다.

모처럼 물꼬를 튼 남북 당국대화도 냉철함을 잃으면 ‘대화를 위한 대화’에 그쳐버린다. 합의와 보상요구→지원→파기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 실패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당국회담이 향후 남북관계의 시금석인 이유다. 치밀한 논리로 상대 허점을 파고들고 기지와 순발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북한의 이선권 단장은 벽두부터 회담장을 선전장으로 삼을 작정을 하고 온 듯하다. 회담을 공개하자면서 “실황을 온 민족에게 전달하자”는 돌발 제안을 한 데서 그런 의도가 읽힌다. 조명균 수석대표가 “관례대로 비공개로 하자”고 밀리는 듯한 대응을 한 유감이다. 오히려 “오! 좋은 제안이다. 우린 이미 5000만 국민이 TV로 거의 실시간 회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귀측(북한)도 2500만 주민에게 생중계되도록 조치할 수 있는가.
 
나도 그들에게 직접 우리 남측 입장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싶다”라고 되받아쳤으면 어땠을까.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상대의 노림수를 꺾고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그게 ‘핵 무력 완성’ 운운하는 북한을 앞으로 제대로 다뤄나갈 수 있는 기본 자세다.

우리 회담 대표단의 보따리엔 적지 않은 것들이 빠져버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의 희생자 유족분들, 그리고 억류 중인 우리 국민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언론인과 그 가족의 눈물이다.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픔만큼이나 국가가 챙겨야 할 가치다. 대통령의 눈물이 반쪽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판문점을 휘감아 도는 레테(Lethe,망각의 강)의 물줄기는 적절한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