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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되고 피가 되는 朴正熙 지도력의 원리
 글쓴이 : 조갑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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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원리와 인간성의 본질을 간파한 바탕에서 장기적 전략을 세우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짠 뒤 세심한 확인으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였다. /趙甲濟   

   
朴正熙 지도력의 원리

 역사의 원리와 인간성의 본질을 간파한 바탕에서 장기적 전략을 세우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짠 뒤 세심한 확인으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였다. 


1. 역사의 원리와 인간성의 본질 간파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경영술은 철학, 전략, 전술, 정책, 실천이 일관성 있게 배치되고, 입체적으로 짜인 아름다운 건축물 같다. 일관성과 입체성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골똘한 사색과 독서를 통해서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다가 치밀한 설계와 신속한 실천, 그리고 철저한 확인으로 속을 채워갔다. 겉으로는 엄정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그의 국가경영술은 안으로 들어가보면 의외로 민주적이고, 柔軟(유연)하였다. 그는 역사의 原理(원리)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전략과 실천은 단순명쾌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말장난이나 현학적 관념론이 낄 틈이 없는 실용성과 합리성이 거기에 있었다.
  朴正熙는 대구사범 5년, 만주군관학교 2년, 일본 陸士(육사) 2년, 한국 陸士 6개월, 미국 유학 1년, 陸大(육대) 1년 등 군대에서만 10여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한국, 미국, 일본식 군사 교육을 두루 받았다. 그는 강한 주체성으로 다양한 외래 문물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한 교양인이었다. 자주적 교양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균형감각과 실용성이 국력을 조직하고 능률을 극대화한 리더십의 바탕이었다.

 2. 국적 있는 교육의 강조

 그는 위대한 교사였다. 국가운영의 기초를 인재 교육에 두었다.  朴대통령은 1972년 2월7일 年頭 지방순시 중 경북도청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처럼 큰 比重(비중)을 두고 힘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의 기본목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유능하고 성실하며, 국가관과 책임이념이 透徹(투철)한 인간을 양성하는 데 있다.』
 朴대통령의 말을 좀더 인용해 보자.
 『지난날 우리 교육은 선량한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막연한 목표를 내세웠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면서도 精神(정신)상태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분간할 수 없고 국가이념조차 분명치 않은 인간이 되고 마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먼저 훌륭한 한국인이 된 다음에야 선량한 민주시민도 될 수 있고 인류사회에 貢獻(공헌)하는 세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나라에 쓸모없는 인간이 세계를 위해서 공헌했다는 기록은 동서고금을 통해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 우리 교육의 제일차적인 목표는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을 길러내는 데 두어야 하겠고, 그것이 또한 우리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겠다.』

  3. 원리의 도출과 브리핑의 중요성(오원철 전 경제 수석 비서관 정리)
 
  朴正熙 대통령이 사업을 추진할 때는 정해진 단계가 있다. ①원리의 도출 ②원칙의 수립 ③시행계획 작성 ④집행 단계이다.
  朴正熙 대통령 때는 「브리핑 행정시대」 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컸다. 브리핑 제도를 이해 못하고는, 朴대통령 시대의 행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브리핑을 할 때는 그 목적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내용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이 브리핑의 골자를 이룬다.
 
  ○ 「출발점」부터 「결론」까지 모두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 줄거리는 一路 매진하는 식으로 나가야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 구분을 해 주어야 이해하기 쉽다. 구분에는 큰 구분과 작은 구분이 있다. 그리고 메시지 전달을 돕기 위해 도표를 많이 사용한다.
  ○ 브리핑 설명은 순식간에 납득이 가능하도록 간단명료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이해하기 쉬운 말을 써야 하고, 거부감이나 혼선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난해한 이론은 금물이다.
  ○ 강조해야 할 사항은, 되풀이 설명한다. 되풀이 설명하면 여러 사람이 머리에 남게 된다. 학술논문 발표와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 결론은 명확해야 한다. 이론 정연하고 실시 가능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청취자 전부가 동감을 하게 되고, 대통령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原理의 도출
 
  원리라는 것은 발견되는 것이지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민생고 해결과 경제자립」은 우리나라 1960년대 초기의 「경제개발 원리」였다. 朴대통령은 이 원리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라는 정책을 수립해서 추진했으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출제일주의 정책」으로 전환을 했다.
  수출을 하다 보니 「수출이야말로 국가 기본전략」 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 朴대통령은, 「수출제일주의」를 우리나라의 국시(國是) 즉, 「경제발전 원리」로 승격시켰다. 「국민생활향상」 「고용증대」 「수출제일주의」 「공업입국」 「전산업의 수출화」 「국민의 과학화」 「남북한 경쟁에서의 승리」 「고도산업국가 건설과 선진국 진입」 등이 「경제원리」에 속하는 사항이다. 국가원수인 朴대통령이 직접 담당해야 할 과제인데, 청와대 비서진이 보좌하게 된다. 朴대통령은 임기 18년 동안, 도출된 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국민도 믿고 따라간 것이다. 원리가 통하는 시대였다는 뜻이다.
  원리(原理)나 국시(國是)라는 것은 잘못 사용하다 보면, 정치 구호화(口號化)되기 쉽다. 어떤 정치가가 「우리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수출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 보았자, 이것은 정치구호의 역할밖에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피하려면 비전 형태로 제시해야 하는데, 비전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그래서 비전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원수의 중요한 책임사항이 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수치화(數値化)하는 방식을 썼다. 수치로 표시하면, 국민들은 알아듣기 쉽다.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의 수준을, 현재와 비교할 수 있고, 진행 과정도 수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朴대통령은 「수출 제1주의시대(1964~1970년)」에는 10억 달러의 수출목표를 제시하면서, 연간 40%의 수출증가율을 요구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보리밥을 먹을지언정 국민의 생활고(生活苦)는 해결된다고 했다. 경제자립의 기초가 마련된다고 했다. 「全산업의 수출화시대(1973~1980)」에는 100억 달러의 수출목표와, 년간 40%의 수출증가율을 지시했다. 이 목표달성으로 국민 1인당 GNP는 1,000달러가 돼서 국민의 의식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고,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국가가 된다고 했다. 북한과의 경제전에서는 완승(完勝)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정부를 독려하고, 국민을 격려했다. 이것이 朴대통령의 국가경제건설 전략이었다. 그 결과 연간수출증가율은 1964~1970에는 41.9%, 1971~1979에는 39.8%를 달성했다. 16년간 평균 40%의 성장이라면, 기적과도 같은 성과이다. 朴대통령의 성품 즉, 신념, 집념 그리고 고집을 잘 나타내는 결과이다. 수출이 증대하다 보니, 그 효과는 全산업에 파급되고 고용도 급격히 늘어났다. 국민의 생계도 좋아졌다.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정신면에서는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을 심어주기 위한, 산 교육장 역할도 했는데, 이 정신은 지금까지도 살아 남아서,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고 있다.
 
 4. 세심함

  박 대통령은 전략과 원리만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실천과정에서 세심한 확인에 역점을 두었다. 朴대통령이 1973년 7월3일 경주 불국사 복원 준공식에 참석해 내린 지시를 보자.

 <6. 경주 불국사 주변 미화 및 정리에 대하여
 가. 불국사 주차장의 1~2호 변소 뒤편에 벚꽃나무를 植栽(식재)하여 미화할 것.
 나. 불국사 신 택지조성지구의 상가점포 신축공사는 기간 내(8월15일까지)에 완공하도록 할 것.
 다. 불국사 경내의 오동나무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보내도록 할 것.
 7. 불국사로 가는 길 양측에 「입산금지」 간판이 서 있는데 그와 같은 것을, 포항제철에서 경상남도 道界(도계)까지 適所에 더 많이 세우도록 할 것.
 8. 화랑의 집 뒤편 남산에 자생하고 있는 꼬불꼬불하고 클 수 없는 잡목은 제거하고 적합한 樹種으로 대체하도록 할 것.>

 이 대목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나무 심는 것까지 간섭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가 전체를 보며 동시에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장실 뒤편에 벚꽃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한 까닭은 4월에 관광객이 들기 시작하고 4월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다(경주는 4월 벗꽃의 명소가 되었다). 특히 상가점포의 완공을 8월15일까지 하라는 것, 「입산금지」 간판을 세우라는 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지시이다. 8월15일은 국경일이자 공휴일이니 그 날 개점을 하면 여러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이다.

 5. 모든 지도자를 위한 참고 자료: 朴正熙 리더십 12계명
 
  1. 화합형 정책 결정: 朴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었다. 엉터리 보고라도 끝까지 들어주었다. 좀처럼 즉석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의 의견을 제시한 뒤 主務(주무)장관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주무장관이 發案(발안)한 정책이 채택되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 정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남을 통해서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 민주적 정책 결정: 朴 대통령은 어떤 회의에서도 먼저 발언하지 않았다. 토론을 시켜 문제가 제기되고 贊反(찬반)의견의 방향이 잡혀가면 그때 결론을 도출하고 필요한 보충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은 민주적이었다.
 
  3. 생산적 회의: 朴 대통령은 월간경제동향보고, 수출진흥확대회의(무역진흥회의), 청와대 국무회의, 국가기본운영계획 심사분석회의,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를 정례화하였다. 이들 회의는 대통령이 國政을 종합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 점검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기회였다.
 
  4.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 朴 대통령은 계획수립에 20%, 실천과정의 확인에 80%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중앙부처 및 지방 순시 등 현장 시찰을 자주 한 것도 집행의 확인과 士氣(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했다.
 
  5. 국민의 각성과 참여: 朴 대통령은 국민들이 自助(자조)정신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의 패배의식과 싸워 이긴 사람이다. 그는 京釜(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눈에 뜨이는 구체적 업적을 통해서 국민들의 체념과 自虐(자학)을 자신감으로 교체해갔다.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 도 작사 작곡했다.
 
  6. 정부는 맏형, 기업은 戰士(전사): 朴 대통령은 경제관료와 기업인이 異見(이견)을 보이면 많은 경우 기업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채택했으나 기업이 엔진이고, 경제전선의 戰士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기업 엘리트를 존중해주었고, 기업인들은 대통령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7. 내각에 권한과 책임 위임: 청와대 비서실이 장관 위에 군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했다.
 
  8. 관료엘리트 중시, 학자들은 자문역: 실천력을 중시하던 朴대통령은 집행기관장으로서는 학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자문역으로만 부렸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인 南悳祐 부총리였다. 南부총리도 실무능력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重用(중용)되었다.
 
  9. 정치와 군대의 압력 차단: 그는 관료들이 國益(국익)과 효율성의 원칙하에서 소신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고 견제했다. 군대의 힘으로써 집권한 사람이 군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예는 매우 드물 것이다.
 
  10. 경제발전 우선주의: 朴대통령은 경제발전이 결국은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先 경제발전, 後 민주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따른 비난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대응했다.
 
  11. 市場(시장)의 한 멤버로서의 정부: 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한 참여자라고 생각했다. 朴대통령 시절의 정부는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시장의 일원으로서 시장 기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기업가, 은행가, 개혁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電力(전력), 철강 등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公기업을 만들어서 맡아서 하되 경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官治(관치)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CEO로 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었다(김용환)'
 
  12. 선택과 집중과 고집: 朴 대통령이 채택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 중점 투자전략, 先성장-後분배 전략, 과감한 외자유치 전략은 모두 성공했다. 朴 대통령은 정책과 전술은 수시로 변경했지만 철학과 전략은 18년 동안 그래도 밀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