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 지도층 생활상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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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층 생활상

남한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이라면 아주 가난한 나라로 알고 있다.
현실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월신 심각하다.
김일성이 도발한 6.25전쟁이후 북한주민들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속박에 철저히 묶여 하루의 여유분도 없는 낮은 수준의 식량배급제와 출신계급과 직위, 직급에 따라 엄청난 차별적인 식품, 생필품공급과 열악한 문화생활환경속에서 일반주민들은 항시적인 생활난에 쪼들려 왔다.

북한주민들의 절대다수는 당국에서 주는 식량배급에 목매여 있었기에 80년대부터 시작된 식량난이 90년대에 들어와서는 급격히 악화되면서 하루평균 500g의 식량배급마저 공급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여기에다 생활환경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몇 십년동안 잠재되었던 콜레라, 장티브스, 파라티브스, 홍역을 비롯한 전염병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영양부족으로 허약해진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먼저 떼죽음을 당했다.

본인이 북한에 있을 당시 가장 어려웠던 1994~1998년의 5년 기간만도 300만 이나 되는 주민들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김정일절대독재에 항변(吭辯)한번 못하고 죽었으며 그나마 용기를 가진 20만이 넘는 사람들은 기아로부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동북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들이 남한사회에 널리 알려진 탈북자들이다.

아마 남한이 가장 어려웠던 6.25동란과 전후의50년대보다 더 험악하고 무질서한 악몽과 같은 고난(苦難)생활이 지금 북한주민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러함에도 김일성-김정일부자를 중심으로 한 권력 핵심층들은 인민(人民)위에 군림하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법적인 권세와 무한한 부(富)를 누리면서 산해진미에 “기쁨조”아가씨들을 끼고 밤새도록 방탕한 생활에 침취되어 있는 것이 베일에 가린 또 다른 북한의 내면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전국곳곳에 80여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호화판사택과 별장(북한에서는 ‘초대소’라고 부른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석부”라고 부르는 “금수산기념궁전”은 현재 김일성이 죽어서도 홀로 사용하고 있는 대궁전이다.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의 대동강기슭에 위치한 이곳은 1977년에 완성되어 김일성의 관저로 쓰였는데 총부지 면적은 350만m²(약 106만평), 지상건축면적은 34910m², 건물형태는 유럽식 궁전을 본딴 4~5층 복합석조건물이며 지하 200m 깊이에는 평양지하철과 연결된 전용지하철이 유사시를 대비해 건설되어 있다.
이곳 경비 병력만도 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막대한 부지 안에는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을 비롯해 동물원, 승마장, 연못, 사격장, 낚시터, 수영장, 외국수반들 국빈방문시에 사용되는 십수동의 건물들이 울창한 수림을 경관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외국수반들과 명인들은 초호화판 대규모궁전을 보고 한결같이 감탄하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후 김정일은 아버지의 시신을 영구보존한다면서 수억딸러의 돈을 들여 이곳을 개조해 “영생관”을 만들었는데 건설에 수십만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죽은 뒤에도 김일성은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생전에 김일성은 전국각지에 30여개의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삼지연별장, 연풍호별장, 묘향산별장, 자모산별장, 서호별장이 유명하다.
양강도 삼지연군 삼지연읍 가까이에 위치한 삼지연별장은 95만m² 부지에 삼지연 연못이 절경이다.
연풍호 별장은 김일성별장가운대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평남 안주시 연풍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곳 호수주변에는 낚시터와 함께 김부자의 전용 사냥터가 있다.

묘향산별장은 자강도 묘향산에서도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호랑령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4년 7월에 완공되었는데 50만m² 부지에 한옥 형태의 대형 복합건물이다.
자모산별장은 평안남도 평성시 자모리에 있는데 인근인 평양시 용성구역에 김일성의 장수연구소가 있어 자모산별장은 일명 장수별장으로도 불렸다.
김일성은 생전에 장수연구소에서 생산하는 만병춘버섯 등을 제공받기 위해 일년에 5회 정도 들려 7~10일간 휴식을 취했다.
최대 규모였던 자모산별장은 관리직원만 150~200명, 그중 여자 직원이 반이었고  5000명의 병력이 별장을 호위했다.
 
김정일은 아버지에 비해 월신 많은 관저와 별장, 여럿명의 첩들을 두고 온갖 사치와 불륜, 산해진미로 주에 2~3차정도 측근들과 밤새도록 술판을 벌리면서 자기의 여자들인 “기쁨조”가 출연하는 엽기적인 방탕한 공연 때문에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을 정도로 무모하게 진행되었다.

김정일이 전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초대소는 평양 장성초대소, 강동 32호초대소, 복마초대소, 대동강 문수초대소, 함경남도 함흥의 서호초대소, 함남도 낙원군의 해저별장, 원산시 무남리의 원산초대소 등 전국에 80여개나 된다.
특히 평양시 룡성구역 55호 초대소와 장선초대소, 강동군 복마초대소, 평양104호특각, 연풍호, 정방산, 창성초대소에는 인공호수, 경마장과 유흥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건물과 건물사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차를 이용해야만 다닐 정도로 초대규모의 별장들이다.

이외도 전국방방곡곡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은 김정일의 별장으로 일반인들은 절대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초호화판 비밀스러운 곳에서 김정일과 그의 가족, 측근들이 사용하는 물자를 “1호물자”라고 하는데 세계각지의 최고의 명품들로써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이 먹고 마시는 식품과 일용품은 동남아시아의 열대과일을 위시해 지중해 연안국의 오렌지, 수단의 수박, 스칸디나비아의 바닷가재와 연어, 이란의 캐비어, 독일 맥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의 샴페인과 포도주, 스페인의 거위 알, 덴마크의 돼지고기, 오스트리아의 소시지와 치즈, 독일과 미국의 의약품, 일본의 도자기와 의류, 프랑스 향수와 샴푸, 일제 또는 미제 컴퓨터, 시세이도 화장품, 남부 아프리카에서 밀수하는 코뿔소의 서각(犀角), 에디오피아의 고양이 사향, 물개거시기, 야자상어, 다랑어 등 세계에서 진귀하고 값비싼 최고의 것들이다.

이러한 “1호물자”구입과 이에 필요한 돈은 당 총무부장이자 경리 담당부서인 39호실의 실장이면서 일명 ‘김정일의 금고지기’인 최봉만과 김정일 직속 서기실 박용무를 비롯한 극히 몇 명이 마케도니아, 포르투갈, 브라질 등의 위조여권을 가지고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김정일을 위한 물자 조달에 신명을 다 바치고 있다.

1호물자는 주로 컨테이너로 항공 수송을 하는데 물자가 많을 때에는 김정일의 전용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의 재외공간은 1호물자 수송에 최우선 순위로 협조해야 하며, 베이징에 있는 고려민항총국은 1호물자를 모두 받아서 평양까지 보내는데 목숨을 건다,
물자조달에 제일 어려운 것은 삼복더위에 파리, 로마, 제네바 등지에서 오는 아이스크림을 녹이지 않게 평양에 보낼 때이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은 일본의 도쿄, 코펜하겐과 로마에서 포르노 잡지와 남녀 성생활 보조기구까지 구입해 가고 있다.

이러한 1호물자가 넘쳐나는 김정일의 특급초대소에서는 매달 여러 차례의 ‘기쁨조’ 향연을 즐기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10여명 정도의 간부 절대다수가 김정일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지만 김정일은 자기 아래서 굽신거리며 아부하는 것을 대단히 즐겨 그가 옷을 벗으라면 다 벗어야하고 ‘기쁨조’의 젊은 아가씨와 짝을 지어 어느 밀실에 보내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

이와 같은 난잡한 생활 외에도 김정일은 영화배우나 예술단의 반반한 젊은 여성들과 밀애를 하며 이들에 대한 후한 생활보조와 전용기까지 태워 해외여행을 시키는데 이것은 북한주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북한의 고위간부들은 모두 독일의 V280형이상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다니며 김정일 측근일수록 여러 대의 고급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차, 피아노, 금화, 오메가금시계와 보석반지, 캐시미어 실크로 만들어진 맞춤옷을 비롯한 사치품들이 그의 생일을 비롯한 기념일에 주기적으로 하사된다.

13년 동안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일하다 2001년 4월 북한을 탈출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는 2001년 3월 25부터 3월 30일 사이 미식가 김정일의 메뉴판(차림표)에는 야자상어날개탕, 물고기목이버섯술찜, 염소고기샤슬리크, 자라함찜, 게장즙서란화볶음, 소쫄뚜기튀기은행즙, 뱀장어카비아, 다랑어도로, 쏘가리, 깡빠치, 네기도로, 도비꼬새우뎀뿌라, 나메꼬버섯된장국, 상어날개소라탕, 코야, 대군상어날개홍쏘, 비둘기간장찜, 왕새우회, 들버섯생채, 죽생상어날개탕, 쏘가리룡정차찜, 참깨닭구이, 라클레트치즈구이, 도라지볶음, 송이버섯, 통과참나무버섯찜, 카레밥 등 듣고 보지도 못한 최고급요리가 태반이다.

김정일의 요리에 대한 지론은 첫째가 눈(모양과 색), 둘째가 향기, 셋째가 맛이다.
그는 일본요리, 중국요리뿐만 아니라 스테이크도 좋아해서 프랑스로부터 직접 요리사를 불렀으며 미디엄(Medium) 이나 레어(Rear)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고 그 후로는 김정일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 ‘미디엄이나 레어’로 굽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초밥(스시)은 매주에 한 끼는 꼭 먹으며 일본요리의 셈세한 맛은 김정일의 미각에 꼭 맞아 생선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고추냉이(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먹었고 특히 ‘뱀장어 캐비어 초밥’을 좋아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아들들인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의 넓고 넓은 초대형 놀이실에는 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수천만불 어치의 한번도 만져보지도 않은 셀 수없이 많은 완구가 진열되어 있다.

김정일과 그 가족, 측근간부들의 호화 방탕한 생활과 진수성찬을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 인민들은 손에 피가 터지도록 금을 캐고 산나물을 뜯고 바다로 나가지만 하루 한 끼의 쌀밥도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으나 이들은 애완용 동물에게 외국산 고급과자를 먹이고 프랑스제 샴푸로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의 이러한 방종과 초호화판 사치생활은 극비에 붙혀 있기에 절대다수의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보내주는 쌀도 이들에게는 차례지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북한주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진다면 아마 김정일정권은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