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그곳이 왜 지옥인지 모르는 사람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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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북송과 함께 아들과 생이별한 탈북여성의 통곡, "아직도 그곳이 왜 지옥인지 모르고 있는 내 아들을 구해 달라"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왜 그 곳에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이유조차 모른다"

한 때 강제북송되어 사지를 헤메었던 탈북자 안진희(女. 가명)씨가 인터뷰 도중 본 기자에게 던진 섬뜩한 한 마디였다.

아들, 남편과 생이별하고 한국으로 입국하기까지 기구한 운명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는 이 모든 것이 탈북자 강제북송에 혈안이 된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가족들을 찾기 위해 본 방송국을 방문한 안 씨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날 그는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 그리고 북한 현지의 실태를 생생히 증언했다.

안 씨는 지난 2003년 3월 말 경, 아들과 함께 강아지 11마리를 품에 안은 채 애완견 장사꾼으로 위장하고 두만강을 건너 탈북 했었다는 말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간신히 중국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나 동년 4월 10일 심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아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역전에 나간 자리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렇게 5년여에 걸친 모자(母子)의 생이별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북송되었을 당시 불과 14살이었던 아들이 홀로 북한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찾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위부에 갇혀 있었던 안 씨는 그 사실을 훗날 탈출한 후에야 친척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늘상 그렇듯 탈북자들을 모질게 다뤄 온 북한 보위부는 그들 모자의 운명이 맞닥뜨리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았다.

안 씨가 공개한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실태는 실로 놀라웠다.

그는 중국 공안이 획득한 '인간 사냥물'들을 북한에 넘기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탈북자들에게 뻔한 거짓 협박까지 서슴치 않는다고 폭로했다.

공안은 잡혀 온 탈북자들에게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몰래 두만강까지 보내 주겠다'며 '한국행'을 시인하도록 수 차례 강요했으며, 실제로 이 협박에 속아 한국행을 고백한 탈북자들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안전이 보장된 고향행 티켓이 아닌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종신형이었다.

강제북송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안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온 것 이었다'며 끝까지 버텼으나 그것으로 그가 강제북송을 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약 1주일 뒤인 4월 18일 북한으로 북송되었으며, 그 곳에서 안 씨는 북한 보위부를 경험했다. 그가 고백한 보위부의 실체는 지금까지 알려져 오던 것 이상이었다.

국경을 넘어 그를 맞은 것은 보위부 요원들의 거친 욕설과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주먹과 구둣발 아래 온성 집결소에 넘겨진 그는 한 줌도 안 되는 풀죽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돌 나르기, 모래 나르기 등의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옷까지 모두 벗겨진 채 탈북자들 간에 서로의 은밀한 부위을 헤집게 하는 인간 이하의 성고문까지 당했다고 안 씨는 폭로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5월 경 다시 청진 집결소로 넘겨진 그는 이름과 나이 등 모든 것을 위조해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모든 것이 탄로나면서 지난 시간 공들였던 모든 노력들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해당 안전부에 이감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가 탈출한 것은 그 때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안 씨는 오로지 살아서 아들을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오후부터 자정까지 쉴 틈 없이 달린 끝에 두만강 가에 이를 수 있었으며, 그 길로 다시 탈북해 심양에서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탄압당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른다. 그것이 너무도 아프고 분한 것이다.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은 인권이 이렇게 잘 돼 있고 자유 보장이 잘 돼 있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 잘 돼 있는데 북한은 모르고 있는 것이 분하고 아프다. 그런 땅에서 내가 살았다는 것조차도 내가 너무나도 분했다"

안 씨는 인터뷰 도중 끝내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그는 지금 오로지 두 가지 목표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는 아들을 만나는 것, 또 하나는 북한의 민주화였다.

"아들을 찾게 된다면 국제 인권운동에 아들을 바치겠다"고 다짐한 안 씨는 "내가 구원 받은 것처럼 북한의 많은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구원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소망했다.

그는 이 날 탈출 당시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자신을 숨겨주고 두만강에 바래다 주었던 친구를 회상하며, 고향의 주변 이웃집들에서 끝내 굶어죽어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며, 중국 수감소에 갇힌 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종신형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탈북자들을 생각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 주 - 이 날 절망과 분노, 하지만 놓칠 수 없는 일 말의 희망 속에서 이루어진 안 씨와의 인터뷰 전문은 이어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