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9·9절 아침, 평양에서 무슨 일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391  
9·9절 아침, 평양에서 무슨 일이…, “정권타도 낙서에 삐라까지 뿌려져” 소문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9·9절 아침 평양에서 ‘김정일을 타도하자’는 낙서와 삐라가 뿌려졌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의주 내부소식통 박민자(가명,女,52)씨는 인터뷰를 통해 “얼마 전에 평양에서 온 장사꾼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9월 9일 아침 평양 통일거리 충성다리에서 ‘김정일을 타도하자’는 낙서가 발견되고 시장에는 삐라들이 뿌려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평양 통일거리의 충성다리에는 기둥이 8개가 있는데, 그 중 한 개 기둥에서 ‘김정일을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발견되어 보위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며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리에 글씨를 쓰려면 강으로 배를 타고 나가서 써야 하니까 모래 파는 사람들이 했다는 소문도 있는데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또 “9·9절 아침에 통일거리 시장에서 삐라가 뿌려졌는데 내용은 ‘이것도 사회주의냐’, ‘백성들은 굶는데 간부들만 배불리 먹어서 되는가’, ‘김정일 시대를 끝내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 씨는 “이 삐라는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인쇄된 상태로 나왔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를 현상해주는 사진사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하고 있지만 역시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 내용은 평양에 있는 사람 중에 왠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하고, 위에서는 이 일이 안기부 작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北 주민들, “내년부터 장마당 통제 본격화된다” VS “쉽게 그럴 수 없을 것”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정책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각이 ‘2009년 1월 3일부터 매월 1일에만 시장을 여는 일명 ‘1일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지시문을 각 시, 군으로 내려 보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평양시를 전 지역의 본보기로 삼기 위해 10월 10일부터 평양시내 모든 구역에서 한 달에 한 번(매달 10일)만 시장을 열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양강도 내부소식통 김철구(가명,남,45)씨는 “얼마 전 1일, 11일, 21일에만 장을 열도록 하는 ‘열흘장’ 제도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는 이야기가 간부강연회에서 나온 바 있다”고 말했다. 신의주 내부소식통인 박민자(가명,녀,52)씨 역시 “시장관리소 관리원들이 11월부터 전역의 상설 시장을 열흘장으로 돌린다는 방침을 일반 주민들에게 전달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반면 함경북도 내부소식통 정미선(가명,女,54)씨는 “최근에도 인민반 회의에서 내년부터 새로운 시장 관리정책이 시행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하지만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고 내년부터 장마당을 없애고 농민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소리”라고 전했다.

이런 시장통제 소식과 관련 소식통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젠 지겹다. 장마당 단속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지금은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올해 초부터 장마당을 열흘장 혹은 농민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만약 지금 장마당을 농민시장으로 전환한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장마당에서 돌아다니는 상품 대부분이 간부들과 연관되어 있는데, 간부들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며 적극적으로 장마당 통제에 나서겠는가?”라며 장마당 통제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요 지역 장마당, 아직은 특이한 동향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

일단 현재까지 장마당 운영과 관련해서 특이한 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11월 10일 중국 단둥(丹東)을 방문한 화교무역상 장 씨는 “평양(10월 26일)이나 은산(10월 28일), 평성(10월 29일), 신의주(10월 30일) 등은 매일 정상적으로 장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최근에 내가 들은 소문 중에는 11월 10일부터 개인 무역 일체를 철저하게 금지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라 제대로 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청진, 회령, 무산 등 함경북도 주요 도시들의 장마당 운영에서도 특이한 동향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함경북도 내부소식통 정미선(가명,女,54)씨는 “얼마 전부터 중국 상표를 달고 있는 것을 장마당에서 팔지 못하게 한다”며 “그래서 지금 이쪽 장마당에서는 러시아 물건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아마 내 생각에는 어느 힘있는 간부가 러시아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것 같다”며 “그 간부가 러시아 물건을 팔기 위해 중국 물건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장마당이 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 외에는 뭐 특별한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물가동향 (평안남도 은산군, 함경북도 무산)





함경북도 회령시 ‘보복살인’으로 시끌, 범인 검거위해 국경과 도로 모두 봉쇄

함경북도 내부소식통 정미선(가명,女,54)씨는 “최근 회령은 얼마 전 일어난 보복살인사건 때문에 국경단속이 강화되는 등 여러 가지로 시끄럽다”고 전했다. 정 씨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지난 7일 노동단련대 형을 마치고 나온 심 모씨(39,男)가 자신을 고발한 주민이자 친구 김 모씨(34,男)를 살해하고 도주한데서 비롯되었다.

김 씨는 살해당하기 몇 주 전 심 씨를 ‘마약복용 및 거래혐의’로 보안서(경찰서)에 신고를 했으나 심 씨는 조사과정에서 마약복용 및 거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결국 보안원들이 김 씨와 심 씨를 대질심문 시키면서까지 혐의를 확인하려했으나 결국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고 비교적 가벼운 노동단련대 형을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노동단련대 형을 모두 마치고 나온 심 씨가 김 씨에게 앙심을 품고 김 씨를 살해한 것이다.

소식통은 “살인범이 죽은 사람의 피로 그 집 벽에 보안원들과 위(김정일)를 비방하는 글을 써 놓았다는 소문들이 돌고 있다”며 “그 때문에 무조건 범인을 잡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그 사건 때문에 지금 국경이고 도로고 다 막혔다”며 “온성으로 통하는 도로들에 보안원들이 나와 사진까지 들고 사람들을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강도 혜산, 주택 400세대 강제 철거 “이 겨울에 어떡하라고…”

양강도 혜산에서 ‘국경관문도시 꾸리기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혜산시 송봉동 지구의 주택 400세대를 강제로 허물고 주민들을 내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강도 내부소식통 김철구(가명,남,45)씨는 “10월 중순경 갑자기 위에서 송봉동 주변의 집을 모두 허물고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고 선포를 하더니, 집을 비워야 한다고 선포한 지 3일만에 돌격대가 들이닥쳐 집을 허물어댔다”며 “갑자기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사람들에게 들으니 이번 일로 인해 400세대의 주민 1,400명 정도가 집을 잃고 한지(밖)에 나앉았다”며 “일부는 자기가 다니는 공장이라든지 친척들 집으로 옮겨 갔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늙은이들이나 힘없는 사람들은 그냥 주변에 대충 막을 치고 살고 있다”고 전했다.

밖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전기와 수돗물도 없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소식통은 “요즘은 날씨가 영하 10~15도까지 떨어지고 있는데, 땔감조차 변변히 없는 주민들의 생활은 말 할 지경이 못 된다”고 전했다. 특히 “이 겨울에 어떻게 아파트를 건설하겠나?”라며 “어차피 건설도 못할텐데, 숱한 살림집들을 허물고 주민들을 내쫒은 것에 대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빼돌리려는 者, 막으려는 者, “조선은 지금 쌀과의 전쟁 중”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도 각 농장들의 식량 수확이 끝나면서 쌀을 둘러싼 ‘빼돌리기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평안도 내부소식통 박민자(가명,女,52)씨는 “수확이 끝나자 쌀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며 “규찰대를 중심으로 농장주변과 도로에서 검문검색이 부쩍 강화되었다”고 전했다.

박 씨는 “평성과 신의주 사이의 검문 초소가 10개인데 보통 2~3곳에서만 물건에 대한 검열을 진행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초소도 18개로 늘어나고 10여개 초소에서 모두 짐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쌀을 30kg이상 갖고 이동하는 것을 단속하는가 하면, 대량으로 쌀이 움직이는 경우는 보안원이 직접 검열에 참여해 송장을 확인하고 마대 수까지 꼼꼼하게 세며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씨는 “올해는 예년처럼 농장 관리원과 각 지역 양식창고 책임자간의 뒷거래가 조금은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 와중에 쌀을 빼돌리려는 사람과 막으려는 사람간의 전쟁이 벌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씨는 “올해는 다행히 예년보다 많은 쌀이 수확되어 대풍이라는 말도 돌아가고 있다”며 “정확한 양까지야 모르지만 농장원들이 대부분 감자, 옥수수, 밀, 쌀 농사 등이 모두 잘 되었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北주민 인터뷰-①] “공장원 132명중 20명 정도만 출근”

함경북도 ‘길주건설기계수리공장’에서 기계 수리일을 맡고 있는 김명철(가명,男,43)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김 씨는 10월 27일 중국을 방문했으며 현재 친척의 도움으로 중국 길림성 모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씨는 “공장원 132명중 정상적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20명이 될까 말까 하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초 캐기, 장마당 장사, 뙈기밭 등으로 생활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에서 직업은 무엇이었나?

-함경북도 길주건설기계수리공장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다. 하지만 요새는 공장에 나가지 않고 약초를 캐거나 뙈기밭 일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예전에 의사였는데 지금은 같이 농사를 짓고 있다.

공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 7시 30분에 출근을 해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15분가량 독보(주로 김일성·김정일의 저작을 읽는다)를 한다. 독보가 끝나면 작업반장에게 하루 작업분량을 하달 받아서 8시 30분부터 일을 한다. 작업은 어느 공장이나 단위의 기계가 고장났다고 하면 가서 수리를 하는 것이다. 일의 대상에 따라 작업조의 크기는 다르게 편성된다. 12시 30분부터 점심식사 시간인데 밥은 집에 가서 먹는다. 오전에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오후 4시 30분까지 일을 계속 한다. 5시가 되면 작업총화를 하고 퇴근한다.

공장의 출근율은 어느 정도나 되나?

-내가 일하는 길주건설기계수리공장의 총인원은 132명인데,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략 20명이 될까 말까 한다. 나머지는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다.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재는 없나?

-원래는 6개월을 기준으로 해서 출근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을 노동단련대에 보낸다. 하지만 ‘8·3제도’가 있어서 한 달에 15,000원만 내면 출근을 한 것으로 인정을 해준다. 그렇게 되면 다른 특별한 제재는 없다.

한 달에 받는 월급은 얼마였나? 15,000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

-내 월급은 1,800원이다. 하지만 약초를 캐서 중국으로 넘기면 한 달에 3만-4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거기서 15,000원을 공장에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두 돈을 만들어낸다.

배급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족한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부인은 장사를 하고, 나는 약초를 캐고 뙈기밭을 했다. 약초는 삽주(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주로 위병에 사용), 부채마(외떡잎식물 백합목 마(麻)과의 여러해살이풀. 식용·약용으로 널리 사용), 솔하불(송화분, 소나무 꽃가루)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뙈기밭도 1,200평가량 했다. 주로 강냉이를 하는데 올해는 1톤 500kg을 수확했다. 작년에는 수확량이 1톤밖에 안되었는데, 올해는 농사가 아주 잘되어서 기분이 좋다.

※ 8·3 제도 : 1984년 김정일의 지시로 인해 주민들의 생필품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되었던 생산 증대 운동에서 출발했다. 공장, 기업소 등에서 나오는 폐품, 부산물, 유휴자재를 재활용해 부족한 생필품을 조달할 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나, 최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정한 돈을 공장(기업소)에 상납하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출근으로 인정되는 제도”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北주민 인터뷰-②] 무산광산 노동자, “전기사정 악화로 무산광산 가동 중단”

무산광산 도로대(도로의 유지·보수)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권철민(가명,男,21)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권 씨는 10월 중순 중국을 방문했으며 인터뷰를 통해 “최근 전기사정이 악화되어 무산광산이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특히 “공장이 서자(멈추자) 배급도 나오지 않고, 기름이나 자재를 빼다 팔기도 어려워 생활이 더 곤란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에서 직업은 무엇이었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무산광산 도로대에서 일했다. 도로대는 중국으로 철광석을 가지고 나가는 도로를 보수하는 일이다. 아버지가 제대군인이었는데 무산광산에 배치가 되어서 어머니와 결혼을 한 후 줄곧 그곳에서 일을 했고 아버지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 일과는 주로 어떻게 되나?

-오전 근무는 8시부터 12시까지다.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인데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 한다. 광산 노동자는 광산 식당에서 식권으로 밥을 먹지만 도로대는 집에 가서 먹고 와야 한다. 오후에는 2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한다. 도로대는 낮에만 근무를 하고, 도로가 패인 곳을 흙으로 채우기만 하면 되니까 일도 비교적 쉽고 간부들의 간섭도 적다.

작업은 한 번에 몇 명이서 함께 하나?

-작업조는 보통 10명씩 편성이 되어 있다. 광산에 여자들도 많이 있지만 도로대는 주로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내가 가장 나이가 어리고, 보통은 30-40대 정도의 사람들이다. 10명 중에 조장이 1명 있고 비서가 1명 있고 나머지는 모두 조원이다.

광산 노동자들은 그래도 월급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로대도 그런가?

-일반 광산 노동자들은 한 달에 5~6,000원 정도씩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한 달에 월급 3,000원과 쌀을 평균 16kg 정도씩 배급받았다. 부양하는 가족에게는 한 사람당 6kg씩 주는데, 나는 부양가족이 3명이라 18kg을 합쳐 한 달에 총 34kg을 받았다. 다시 말하면 월급 3,000원과 34kg의 쌀 배급표를 받는 것이다.

그 정도면 한 달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나?

-그것으로는 절반 식량밖에 안된다. 어떤 때는 쌀을 팔아서 강냉이로 바꿔먹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중국 트럭 운전사들이 부식물이랑 먹을 것을 주기도 하니까 그 재미가 있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없어졌다. 이제는 중국차는 중국 세관까지만 올 수 있다. 조선에서 철광석을 실어 세관 앞마당에 내려놓으면 그곳에서 중국차가 철광석을 실어가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중국 사람들이 자꾸 조선 사람들 부탁도 들어주고 그 차를 이용해서 밀수도 많이 하고. 특히 기사들이 광산 사진도 많이 찍고 자꾸 조선 사람들을 접촉하니까 이런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광산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나? 수출량은 얼마나 되나?

-수출량은 내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무산광산이 완전히 멈췄다. 비가 오지 않으니까 전기가 부족해서 섰다고 들었다. 광산이 서니까(멈추니까) 위에서 노동자들을 한 조에 10명씩 구성해서 보초를 서게 했다. 혹시 설비를 뜯어다가 어디 팔지 않을까 해서 경비가 삼엄하다. 예전에는 몰래 차에서 기름을 빼서 팔아먹기도 하면서 돈을 만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2달째 광산이 서니까 배급도 나오지 않고 기름이나 자재를 빼다 팔기도 어려워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 사람들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불만이 아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