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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빠삐용…‘완전통제구역’ 탈출했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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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출생해 22년간 수감 생활을 했던 탈북자의 증언이 공개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북한 평안남도 개천에 위치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한 신동혁(가명. 24)씨의 증언이 일본 니혼TV를 통해 지난 4월 말 보도됐다.

개천군 보봉리에 위치한 14호 수용소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도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완전통제구역에 속한다. 신 씨는 2005년 수용소를 탈출해 지난해 말 한국으로 입국했다.

신 씨는 전 세계에 북한의 참혹한 인권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 얼굴을 직접 TV에 공개하고 증언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이른바 '혁명화 구역'인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는 여러 명 되지만, 북한에서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 완전통제구역 출신 탈북자는 극히 드물다.

완전통제구역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또 그중에서도 탈북에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희박한 확률이기 때문에 신 씨의 증언 또한 사실 확인이 어렵다. 그러나 정보 당국이나 정치범수용소 관련 연구자들은 신 씨가 14호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학위 논문을 발표한 오경섭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완전통제구역은 북한에서도 가장 최악의 인권유린이 발생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지금까지 완전통제구역에 대한 증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증언은 북한인권실태 연구를 위한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씨가 수용소 내에서 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가 수용소에 만나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 내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한 수인들의 목록을 뽑아 순서대로 남녀간 결혼을 시켜준다고 한다.

이를 ‘표창결혼’이라고 하는데,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에만 5일 정도 같은 방 안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다. 이날이 수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

14호 수용소는 개천시를 흐르는 대동강 가까이에 있었다. 대동강은 대흥-개천-순천-평양을 거쳐 서해로 흐른다.

신 씨는 11살 때 어머니와 헤어져 남성들만 수용되는 방으로 옮겨가게 된다. 유리가 아닌 비닐창이 씌어진 곳이었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옥수수와 배추국 밖에 먹은 기억이 없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존재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치범수용소 경비병 출신인 안명철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사상교육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13살 때는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공개처형을 당했다. 형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는 교수형을 당했다. 신 씨는 맨 앞자리에서 그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나 분하거나 슬프다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런 감정들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신 씨 또한 그 사건으로 고문을 받았다. 손과 발이 묶여 지하실에 매달려 있던 그의 등 아래로 화로를 놓고 불을 붙여 등에 화상을 입었다. 신 씨는 수용소 내에서 농장의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새벽 4시에 기상해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했다. 수용소 내 잦은 구타와 고문으로 온 몸에는 상처가 남아있다.

수용소 내에서 중국에 탈북한 경험을 갖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된 신 씨는 그때서야 외부 세계에 관해 듣게 되었다고 한다. 김정일에 대한 이야기도 이때 처음 듣게 됐다.

두 사람은 2007년 1월 2일 산으로 작업을 나왔다가 탈출을 감행한다. 친구가 철조망을 잡고 있는 사이 신 씨가 철조망을 넘었지만 전류가 통해 다리가 큰 상처가 생겼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후 신 씨는 1년간 중국에서 숨어 지낸 후 지난 해 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 모처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인 신 씨는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치범수용소의 현실을 알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