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南지원 기저귀 생리대로 인기폭발'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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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 가명, 전 조선노동당 간부

나는 얼마 전까지 북한 조선노동당 주요 부서에서 근무했다. 신상의 이유로 구체적인 사항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겪으면서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남한 국민들이 너무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이 글을 쓴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을 전후한 시기까지 북한은 소위 ‘공급시대’였다. 모든 주민들에게 식량, 생필품을 국가가 배급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살아 있던 시기였다.

1995년 이후부터는 국가의 공급체계가 붕괴되면서 ‘대량 아사시대’가 도래했다. 이때는 국가의 공급도, 외부의 원조도 전무했던 암흑기였다.

노동당 간부들도 끼니 걱정을 하던 시기였다. 그 이후 외부원조가 들어오면서 ‘원조시대’가 열리게 됐다.

공급시대 때에는 국정가격(국가에서 정한 가격)에 물건을 대량으로 빼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힘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예를 들면 노동당 간부가 평양 신발공장에 압력을 넣어 운동화 수백 켤레를 국정가격(3~5원)에 빼돌려 시장에 내다팔면 당시 시세로 40~50원에 되팔수 있다. 10배 폭리는 기본이다. 골동품 장사, 중고자동차 밀매 등 권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돈되는 장사는 모두 간부들과 그 친인척들이 독점했다.

그러다가 경제가 완전 붕괴되면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게 됐고 배급체계는 완전히 붕괴됐다. 간부들이 국정가격에 빼돌릴 물건도 씨가 말라버린 것이다.

1999년부터 외부원조가 물밀듯이 북한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원조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외부원조의 모든 처분권을 가진 노동당 대남담당 부서 간부들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의료품의 경우 인민군 군수동원총국에 모두 넘겨지고 창광진료소 등 간부들이 다니는 병원에 우선 공급됐다. 식료품의 경우에는 포장을 다시 해 김정일이 간부들에게 하달하는 선물로 사용됐다.

공산품은 대남공작부서인 38호실(김정일 비자금 관리부서)에서 모두 처분해 당 자금을 마련한다.

이 시대의 권력의 척도는 해외원조품을 얼마만큼 빼돌릴 수 있는가로 판가름됐다. 때문에 원조품을 공짜 또는 얼마나 값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 지가 권력자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구호상품들을 닥치는 대로 빼돌려 돈을 버는 늑대들의 이전투구가 시작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달러 모으기 열풍까지 불어 평양시의 간부들 사이에서는 10만달러 모으기 열풍까지 불었다.

당시 나에게는 처와 함께 마련한 1만2000달러의 비자금이 있었다. 한 달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2500원(시장시세로 1달러)으로 가정하면 일반 인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이다.

시장에 팔릴만한 원조품들은 벌써 간부들이 도매금으로 매수해 시장에 되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나도 이러한 시류에 편승해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졸라 비자금을 장사밑천에 써보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펄쩍 뛰며 만류했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 돈을 쓰기로 했다.

당시 39실(노동당 외화관리부서) 창고에는 남한에서 들여온 아기 기저귀용 가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돈이 되지 않을 이 물건은 어느 간부도 거들떠 보지 않은 채로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나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재가 왠지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간부들에게 줄을 대고 비자금을 총동원해 이 가재를 모두 구입하게 됐다.

너비 60cm, 길이 24m의 규격이 한 세트로 포장됐는데, 세트당 2달러로 계산해 대형자동차 2대에 모두 나눠 실었다.

그리고 나서 평양시내의 장사꾼들에게 아기용 기저귀용 가재를 팔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는 시절이라 외화를 주고 가재를 사자면 상류층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2달러에 구입한 가재를 한 세트에 5달러씩 되팔았는데 1000달어치를 팔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다. 역시 달러를 주고 아기 기저귀를 살만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내는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나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나의 근심은 이내 사라졌다.

평양의 대형 장마당인 송신, 중구역, 대동강구역 등 주요 장마당의 거간꾼들이 나에게 가재를 더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저귀 시장은 포화상태인데 영문을 몰라 시장조사를 해본 뒤 나도 깜짝 놀랐다. 아기 기저귀용 가재가 여성들의 생리대로 포장돼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여성들의 생리대는 주로 북한산 가재를 사용하는데 잘 씻기지도 않고 품질이 좋지 않아 불편함이 많았다.

하지만 남조선 가재는 물에 잘 빨리고 질이 좋아 북한산 생리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장사꾼들이 남한에서 보내온 가재로 생리대를 만든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거간꾼들에게 세트에 7달러를 불렀는데 그래도 장사꾼들은 모두 사겠다고 밀려들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1만2000달러를 투자하고 4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남한적십자사에서 무상으로 보내준 것을 대남부서 창고에서 한 세트에 2달러씩 개인적으로 사서 시장에 내다 판 결과였다. 이후 여러 간부들이 가재를 구입해 장사를 시도했지만 나만큼 횡재를 하지는 못했다.

노동당 중간관리급인 나 정도가 이 정도의 폭리를 취하는데 고위간부들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권력만 있으면 아예 공짜로 물건을 빼내 시장가격에 내다파는데 그들은 10만 달러도 우습게 여긴다.

군대로 흘러들어간 식량은 식량대로 군관(장교)들의 몫이 된다. 그들도 재간껏 식량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파는데 돈버는 게 누워서 떡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 됐다.

남한에서 보내준 구호품들은 대부분 대남부서에서 처분하게 된다. 몇 단계를 거쳐 말단 무역회사나 기관에 넘겨지고 또 그들에 의해 시장에 흘러들어간다.

공짜로 받은 구호품들은 노동당 간부들의 외화벌이용으로 농락당하고 있다. 물론 국가에서는 구호품들을 모두 현금으로 전환해 당 자금으로 전용하려고 하지만 굶주린 간부들이 모기떼처럼 빨대를 꼽고 구호품을 빼돌리고 있다.

조선노동당 작전부장 오극렬, 노동당 선전담당 비서 정하철,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용순(2003.10 사망), 빨치산 출신인 조선혁명박물관 관장 황순희 등 고위관리들은 대부분 백만장자급 부자들이다.

물만 북한에서 떠먹고 모든 물건은 일본 상품만을 쓰기도 한다. 김정일 측근 가운데는 북한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외부 세계에서 보내준 구호품들은 대부분 이리저리 빼돌려져 인민들의 등골을 뽑는데 사용되고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층들의 배만 불려준다.

굶어죽어가는 인민들에겐 이런 구호품들은 사치에 불과하다. 그냥 나눠주는 구호품은 거의 없는데다 모두 비싼 가격에 시장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와보니 북한으로 보내지는 구호품들은 자원봉사자들과 북한인민들을 생각하는 많은 국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 보내주는 정성어린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불쌍한 인민들에게 쓰여져야할 구호품들이 노동당 간부들에게 다 뜯겨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려나가니 정작 이 구호품이 필요한 사람들은 남한국민들의 정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북지원의 투명성을 높이고 북한체제 개혁을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이 담긴 좋은 구호품이라 하더라도 북한 인민에게 반갑지 않은 물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