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 정권 60년 남은 건 굶주림, 그리고 '최악의 독재국(國)' 악명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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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은 북한이 1948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선포한 지 60주년 되는 날이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와 60년을 경쟁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북한 앞에는 이제 '사회주의 낙원'의 구호가 무색하게 '주민이 굶어 죽는 나라', '최악의 독재국'이라는 딱지만 붙어 있다.

◆60년 동안 먹고사는 문제 해결 못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주겠다는 김일성 주석의 오래 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 북한 전체 주민 2350여만 명 중 20%인 459만여 명은 미국 원조 식량을 받으며 '공화국 창건' 60주년(9일)과 추석(14일)을 맞는다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줄곧 '자력 갱생'을 외쳤지만 '철천지 원쑤'라는 미국의 원조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게 북한 정권의 최대 실패"라고 말했다.

정권 출범 당시 북한은 일제 때 북쪽에 집중된 산업시설을 바탕으로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지원과 대중 증산운동인 '천리마운동'을 통해 60년대까지 남한보다 경제적 우위를 지켰다. 그러나 1967~69년에만 전체 예산의 30%를 국방비에 쓰는 등 군사·중공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쓰면서 북한 경제는 성장을 멈췄다. 사회주의 시스템 자체의 모순이 겹치면서 1976년에는 대서방 채무불이행 사태에 놓였다.

특히 1974년 후계자로 추대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대 혁명 붉은 기 쟁취운동', '70일 전투', '속도전' 등 경제 논리를 무시한 대중 증산운동을 밀어붙였다가 설비 혹사, 인력 낭비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80년대 말 옛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자 북한식 계획경제는 작동을 멈췄고, 90년대 중반 자연재해까지 닥쳐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개혁·개방으로 나설 조짐이 아직 안 보인다"며 "이런 현실이 정권 수립 60주년을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적화 통일'에서 '체제 생존'으로

북한은 여전히 노동당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의 완수"를 명시, 대남 적화통일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1968년 청와대 습격,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은 모두 이 헛된 욕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북한은 80년대 후반 동구권이 붕괴하고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자 내부적으로 남한에 의해 '먹히지' 않는 방법 찾기에 골몰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김일성 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지 않은 원칙에서 (중략) 연방제 방식으로 실현돼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꺼내든 생존용 카드는 미국을 향한 '핵 도박'이다. 북한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특별 사찰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 1차 핵 위기를 일으켰다. 2002년 10월에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2차 핵 위기가 닥쳤고, 아직까지도 6자회담은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서방의 관심은 '김정일 후의 북한'에 쏠려 있다. 핵 문제와 경제난은 북한 후계와도 연결됐다는 견해가 많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핵 카드를 활용해 미·북 관계 정상화와 경제 회생 등을 달성한 뒤 본격적인 후계 구도 짜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김일성은 62세 때인 1974년 김 위원장을 후계자로 내정했지만 김 위원장은 현재 66세에 당뇨병과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도 후계자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 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은 "장남 정남(37)이나 차남 정철(27)로 3대 세습을 할지, 군부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지, 끝까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을지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