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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출범 후 2년간 외교통상부 차관보로 재직하며 북핵 6자회담 1~3차 회의까지 우리측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李秀赫) 전 주(駐)독일대사가 6자회담, 노무현·부시 정부에서의 한·미 관계 등에 얽힌 비사( 史) 등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전환적 사건’이란 제목의 이 책에서 이 전 대사는 북핵을 다루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한·미 갈등도 일부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2003년 9월 25일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윤영관(尹永寬) 당시 외교부 장관과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윤 장관은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영어로 번역된 정부 훈령(訓令)을 읽기 시작했다. 윤 장관은 “한국 내 여론, 특히 현 정부 지지층에서 유보적 의견이 지배적이라, 파병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데 중대한 장애가 되고 있다”며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전향적 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한국 국민 설득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학자 오핸론(O’Hanlon)과 모치즈키(Mochizuki)의 ‘한반도의 위기’라는 책을 파월에게 선물했다.
이 전 대사는 “파월이 친절함을 잃지 않았으나 감정을 자제하고 있음이 역력했다”며 “윤 장관의 설명과 책 선물에 놀랐을 뿐 아니라 기분이 언짢았다”고 전했다. 파월은 “한국 정부의 입장은 동맹국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고 말문을 연 뒤 “파병 문제와 북핵을 연계시키는 것은 유감”이라며 “(한국 주장대로)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면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계없이 추진하면 된다”고 했다. 이 전 대사는 이 회담 후 미국 관리로부터 “파월이 이 책을 선물받고 언짢았던 것은 ‘파월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것 같으나 미국 학자들은 알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회담 결과에 청와대는 “국내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있는 한국의 입장을 미국이 그렇게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섭섭해했다”고 책은 전했다.
윤영관·파월 회담은 이후 뉴욕타임스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그 전후 맥락이 우리 당국자의 증언을 통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 전 대사는 또 2차 북핵 위기의 직접적 계기가 된 북한의 비밀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둘러싼 미·북 간의 공방을 지켜본 현장 증언과, 평행선을 달린 1~3차까지의 6자회담의 회의장 내부 비사 등을 책을 통해 전달했다. 그는 책 출간에 대해 “그간 언론에 일부 보도됐거나 부정확하게 알려진 내용 등에 대해 국익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국정원 1차장을 거쳐 연세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두식 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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