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53  

김종필 전 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15.11.22.


대한민국 제 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YS·88)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이날 0시22분쯤 숨을 거뒀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21일 오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김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에도 건강검진 차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17일까지 머물다 퇴원했으나 다시 입원했다.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이날 오전 2시 브리핑에서 “고인은 과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폐렴으로 수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며 “직접적인 사망 사망 원인은 쇠약한 전신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 신부전이 겹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2013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중증 뇌줄중과 폐렴 등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이후 9선 의원을 지냈다.

25세로 의정 사상 최연소 의원 기록을 세웠고 대변인 2회, 원내총무 5회, 야당 당수 4회, 여당 총재 1회라는 경력을 쌓았다. 최다선, 최장수 원내총무, 최연소 당수 등 화려한 정치 신기록을 가진 정치인이면서 유신반대, 11~12대 정치규제, 2년간의 가택연금, 1983년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23일간의 단식 등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한 축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에게 져 2위에 그쳤으며, 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그의 통일민주당이 김대중 후보의 평민당에 밀려 원내 3당으로 물러난 이후 1990년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제치고 14대 대통령을 당선돼 ‘문민 시대’를 열었다.

고인은 재임 중 역사바로세우기를 내걸고 12·12군사쿠데타 혐의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등 숙정 작업을 시행했고, 부동산 및 금융실명제와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