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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통일전략] 우리는 김정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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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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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김일성(金日成)을 바로 봐야 산 金正日을 바로 읽는다
하늘은 金日成이 생전(生前)에 자신의 죄 값을 갚을 기회도 박탈하였다. 그 악(惡)의 유산을 물려받은 金正日이 그 죄의 무게에 눌려 파멸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金正日 이후의 민족세력이 등장해야 진지한 통일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金대통령은 金正日체제를 연명시키는 정책 대신 안락사(安樂死)를 유도하는 결단과 슬기를 보여야 할 때다.
6·25, 10·26이란 날짜와 함께 우리 생애에서 영원히 기억될 1994년 7월 9일 낮 12시 조금 지나 기자는 점심 약속장소로 나가려는 순간에 「金日成 사망」뉴스에 접했다.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거의 다 만든 8월호 잡지를 뒤엎어버리고 다시 만들어야겠구나」였다. 뒤따라 온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기자는 간밤에 밤을 거의 새워 「악마(惡魔)와의 축제를 경계한다」는 2백자 원고지 2백장 분량의 기사를 마친 뒤였다. 그 발문(跋文)은 이러했다.
〈「뻗어가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대표선수는 「무너지는 공화국(共和國)」의 마지막 주자를 「경멸과 분노, 그리고 자신감」으로 상대해야 한다. 한민족 5천년사(史)의 변종으로서 패륜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金日成의 핵(核)공갈과 평화(平和)공세를 봉쇄하기 위해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역사적 통찰과 도덕적 결단이 요구된다. 金日成의 미소 뒤에 있는 악마성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북한 동포의 참상에 분노하는 金泳三대통령의 뒤에는 수많은 원혼들과 영령들, 그리고 역대(歷代) 대통령들의 응원이 있을 것이다. 金泳三 대 金日成-그것은 대세와 허세의 대결이다〉
정상회담을 겨냥해서 쓴 이 기사도 대폭 손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새로 꾸며야 할 잡지 내용을 구상하면서 점심을 적당히 끝내고 돌아오니 월간조선부(月刊朝鮮部)로 빗발치듯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5월호에 金日成이 음력 5, 6월에 죽을 것이라고 쪽집게 예언을 한 역술가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와 『축하한다』는 친구-독자들의 격려였다.
지면(紙面) 걱정에서 잠시 해방된 기자는 그 「역술가들의 대 예언」을 쓴 이정훈(李政勳)기자에게 보름 전쯤 『金日成이 올해 죽으면 李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농담을 했던 생각이 났다. 「金日成은 올해 안에 사망(死亡)」이란 단정적 제목을 붙이는 데 우리는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표지나 광고를 통해서도 그 기사를 크게 알렸다. 『별것 가지고 다 팔아먹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때도 이상하게 배짱이 생기는 것이었다.
종교인의 金日成 암살 주장
한달 전쯤부터 기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북핵(北核)문제에 이러쿵저러쿵하는 전문가들이나 미(美) 국무부, 우리 정부 다 못 믿겠다. 차라리 그 역술가들의 예언을 믿고싶다. 예감이 좋아요』 지난 한 달간 기자는 대북(對北)정보통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군(軍)과 안기부의 두 핵심 간부가 우연히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요사이 金日成은 한가해요. 옛날에 신세졌던 사람들을 찾아내고 불러들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어요. 꼭 죽기 전의 신변정리 같단 말이에요. 카터 만나고 정상(頂上)회담 하겠다는 것도 아들에게 체제를 재정비해서 넘겨주겠다는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북(北)은 일종의 「유언체제」가 된 것 같은데…』
『김일성(金日成)을 암살하는 것이 최소의 회생으로써 북한동포를 구하는 길이다』 라는 말도 기자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자주 들었다. 한 종교인은 金日成을 자주 만나고 北의 상층부와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다. 그는 『金日成을 만나면 그 인간 됨에 감복하고 동포들의 참상에 접하면 金日成을 죽이고 싶은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왜 우리 정보기관이 그런 암살계획을 세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월간조선(月刊朝鮮)이 탈북자(脫北者)-수용소 등 북한북한(人權)문제를 깊게 다루어서 그런지 기자는 그 종교인의 흥분이 이해가 되었다. 월간조선(月刊朝鮮)은 1989년부터 북한 및 북핵(北核)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어떤 매체보다도 우리는 북한이 실상과 北核문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6년간은 北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KAL858 폭파범 金賢姬와의 인터뷰(1989년 5∼7월호)를 통해서는 북한인들의 가슴을 점령한 金日成이란 존재의 엄청난 중압감을 실감했다.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1990년 12월호)은 연변 조선족 보따리 장수의 북한 종횡기였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처참한 생활상에 비로소 접한 순간이었다. 그 충격을 바탕으로 月刊朝鮮이 1991년 1월호 별책 부록으로 만든 「북한, 그 충격의 실상」은 일본어(日本語)로도 번역되었다.
日本에서는 가장 중요한 북한(北韓) 입문서로 평가되었다. 그때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살아본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는 평범한 원칙에서 출발하여 귀순자나 체포된 공작원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접근법을 세웠다. 월간조선(月刊朝鮮)의 대북(對北)취재는 출발부터 이론이나 관념이 아닌 사실주의적 접근이었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국익이나 이론보다는 인도주의였다.
올해 들어 月刊朝鮮은 러시아를 유랑하는 탈북(脫北)벌목공, 중국으로 탈출하여 도망 다니는 북한 동포들,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주로 보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자신 있게 金日成을 「악마」나 「스탈린, 히틀러보다도 더 나쁜 독재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용어가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月刊朝鮮은 한번도 金日成이란 이름 뒤에 주석이란 직함을 붙이지 않았다. 『악마에게 주석이라니…』하는 경멸감 때문이었다. 北韓체제의 모든 문제점이 金日成에게서 비롯된 것이란 인식에 도달하면서 金日成의 본질을 간파하는 것이 복잡하게 보이는 북한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지름길임을 알게 되었다. 月刊朝鮮의 기사제목이나 발문(跋文)들이 그토록 자주 金日成 개인을 겨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金日成의 사망이 발표되기 하루 전날 밤에도 기자는 「불가능 인터뷰-저승에서 만난 박정희(朴正熙)」의 본 제목을 「金日成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라고 달았다.
월간조선의 대 김일성 총공세와 같은 시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퇴보세력들이 우리의 북한 인권(人權) 및 북핵(北核) 보도에 대해서 일제 공격을 벌이고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이것은 金日成-金正日과 남한의 퇴보세력이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엮이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했다. 따라서 김일성의 사망은 남한 내 퇴보 세력들과의 동반 자살적인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月刊朝鮮을 비판한 필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는 그런 기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반격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지금이 한반도의 결정적인 순간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대세가 큰 구비로 돌아가는 시기에는 잡념을 뿌리치고 그 거대한 흐름의 한복판에 서서 혼신의 힘으로써 그 흐름을 이끌기도 하고 타보고도 싶은 것이다. 세계사의 도도한 대세가 악마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위선과 증오의 쓰레기까지 쓸어버리면서 호호탕탕 전진하는 굉음을 들려오는 듯하다.
하늘은 김일성(金日成)에게 좋은 일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김일성(金日成)사망 기사를 실은 「한겨레신문」의 金日成생애를 다룬 화보면 표제는 「항일… 북 사회주의 건설-6·25…남북화해 모색」이었다. 이 표제만 보면 金日成은 항일독립운동, 국가건설, 남북화해의 역정 속에서 좋은 일만 하다가 죽은 지도자란 인상을 받는다(6·25에서 「남침」을 빼버렸으니). 金日成의 북한은 세습왕조(王朝), 또는 신정(神政)체제이지 사회주의가 아니다. 어느 사회주의 사상에 「세습」이란 단어가 있는가.
남북화해를 모색했다는 지도자가 아웅산 테러로 남한의 엘리트 인사(人士)들을 떼죽음시키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탄 중동→서울行 여객기를 폭파시킬까. 월간조선(月刊朝鮮)처럼 金日成을 악마로 보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한겨레」도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자유요 힘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임을 새삼 확인하면서 기자는 귀가하자마자 대전(大田)에 있는 주역전공학자 송대국(宋在國)씨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하늘은 김일성(金日成)이 죽기 전에 金대통령을 만나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하겠다는 것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金日成의 죄악은 고스란히 김정일(金正日)에게 넘어갔으니 무슨 재주로 그가 살아남겠습니까. 金日成은 제 명대로 살았지만 죄를 갚지 못해 저승에서 원혼들을 만나 혼이 날 것이고, 金正日은 비명(非命)에 갈 운명입니다. 우리는 거만해지지 말고 기다리면서 지켜보아야 합니다』
이날 낮에 정부의 대북(對北) 고위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이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우리한테 넘어왔습니다. 북한측이 조정기를 거치는 것을 여유 있게 지켜보아야지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50년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우위에 섰습니다. 북핵(北核)문제와 남한 내 친북 세력도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북한(北韓)의 불행은 김일성(金日成)의 장수, 남한의 행복은 박정희(朴正熙)의 타임리한 죽음』이란 말을 자주 써먹는다. 朴正熙가 金日成처럼 오래 살았으면 그의 무덤엔 요즘처럼 수천 명의 참배객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침 뱉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을 것이고 한국은 지금의 북한 비슷하게 되었을 것이다. 남한의 국민들은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등 역대 대통령을 왕 머슴으로 삼아 실컷 부려먹고 전성기가 지나면 매정하게 잘라버리면서 싱싱하게 뻗어갔다.
북한에선 그런 피플 파워가 없었다. 북한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김정일(金正日)을 끝장낼 때 비로소 그들은 남한 국민들의 자유의지를 따라올 수 있는 최초의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金日成 사후(死後)에 신문 사설과 정부당국자의 발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한 논리엔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로서는 김일성(金日成)의 죽음이 자연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질서 있는 권력승계를 통한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희망한다」 남한 사람들이 金正日 세습을 지지한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은 어디로 갔는가. 그 논리를 남한에 적용하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뒤를 김현희(金賢哲)씨가 승계해도 무방하다는 얘기가 된다. 남한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북의 혼란보다는 남한에 득이 된다면 북한 동포들이야 어떻게 되든 金正日의 권력세습을 지지하겠다는 뜻인가.
병역기피를 해서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6·25전쟁 때 수만 명의 미군(美軍)이 죽은 것은 잊었는지 그 전쟁책임자의 죽음을 애도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국내외의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기자는 문득 金日成이 죽기 전에 써버린 「악마와의 축제를 경계한다」는 기사를 다시 손질해 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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