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김성민의북한문학] 버려진 아이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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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난의 여파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는 ‘꽃제비’들이 기하 급수 적으로 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장마당과 역전 등에 기거하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꽃제비’들이 무려 2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외부세계에 북한의 ‘꽃제비’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식량난이 심화되었던 80년대 중반, 1990년대 들어서면서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을 상징하는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됐다.

하지만 ‘꽃제비’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발표된 북한의 한 소설에 따르면 1945년 일제패망 이후,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유랑과 유목을 의미하는 러시아어인 코체비예(kОЧЕВЬЕ)로 불렀다고 적혀져 있으며, 이는 유목과 방랑의 형용사인 코체보이(КОЧЕВОЙ)와 혼재되면서 ‘꽃제비’라는 파생어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8·15 광복과 6·25 전쟁 후 ‘꽃제비’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65년쯤부터 85년경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고아들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관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5년 이후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꽃제비’란 말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사전에도 없는 말이어서 분분한 해석이 따랐고, 소매치기를 뜻하는 ‘잽이’와 ‘잡이’에서 비롯되었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외부세계의 주장이 어떻든지 간에 ‘꽃제비’란 북한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꽃제비’는 “집 없이 떠돌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문제는 이처럼 불쌍한 아이들이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또 다른 말로, 경제난과 식량난의 악화로 아이의 부모들이 죽어간다는 반증이며 북한이라는 나라가 유엔의 인권헌장에 직시된 아동보호의 의무를 포기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꽃제비’들이 크게 늘어나자 북한 당국은 1997년 9월27일 이들을 거두어 보호, 관리하는 ‘9.27 구호소’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수용된 아이들의 배고픔만 가중시킴으로 아이들에게 더 큰 고통만 안겨주다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래서, 다시 거리로 뛰쳐나간 ‘꽃제비’들은 공공장소에서 구걸하고, 시장에서 음식물을 가로채며, 공공건물을 뜯어내다 팔고...그래도 배가 고파 못살 지경에 이르면 국경을 넘어 낯설고 한 많은 타향살이를 시작한다.

며칠 전 라오스에서 “조선에 끌려가기 전에 지옥 가든 천당 가든 죽을 겁니다. 조선에 가도 죽는 건 마찬가진데요 뭐.”라고 강변한 최향 최혁 남매가 그 대표적 어린이들이다. “아저씨, 북한만 안 간다면 지옥이라도 가겠습니다.”던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3국을 떠돌고 있는 ‘꽃제비’들의 한결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사생아처럼 내버려 둔다면, 누가 감히 아비일수 있고, 조국일수 있으며, 나도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