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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칼럼] 朴正熙, "침략을 받을 때는 全국토를 초토화할 각오로 싸워야 한다"박정희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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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지금 깡패정권의 핵개발이란 불이 났다. 일차적으로 이를 진화해야 할 한국의 지도부는 그 불을 끄지 않고 달려온 소방대가 물을 뿌리려 하는 것도 막았다. 불은 계속 타들어간다. 소방대는 이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만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안녕을 위한 국방 과제는 오직 자신들의 책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모름지기 남에게 의존해 온 타성으로부터 탈피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주체성의 확립만이 민족의 산 보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1968년2월27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현 시점에서 자주 국방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지킨다는 뚜렷한 목표와, 이 목표달성은 1차적으로 우리의 힘으로 한다는 自主와 自助의 자세를 그 접근방법으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1971년3월31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또 다시 김일성이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거나 또는 어떠한 오산을 해서 전쟁을 도발하고자 할 때, 이를 만류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지금 북한에는 하나도 없다>(1970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敵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全국토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6.25의 전란을 겪은 지도 어언 20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기성세대에게는 그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쓰라린 경험들도,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찾아보는 한낱 무관한 사건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상흔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그 비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굳은 결의가 퇴색하는 날, 제2의 6.25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1970년5월23일 전국 대학 교련 실기 대회 유시에서)
 
  <임진왜란 전에 10만 養兵을 반대한 사람도 아마 왜적이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는 반드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설마 했을 거다. 일본하고 우리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큰 배가 없는 그런 시절이라 설마 왜적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겠느냐, 이 설마라는 말이 사람을 잡는 말이다>(1971년4월17일 대구 유세 연설에서)
 
  <우리가 아무리 전쟁을 원하지 않거나, 우리가 옛날처럼 북진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거나, 전쟁을 피하려 하거나간에 이제 우리는 적의 도전을 피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과 우리가 살 길은 이들 적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싸워 이기는 길을 택하고, 대결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1968년2월28일 전국 향군 총회 유시에서)
 
  <(이스라엘 키부츠 집단농장 이야기) 그 뒤에 어느 신문기자가 현장에 가보니까 60명이 있던 그 부락이 적의 1개 대대와 싸워서 敵을 완전히 격퇴하는 데 20몇 명의 희생자가 났었다고 한다. 그 기자가 책임자를 보고,
  '이번 전투에서 몇명의 희생자가 났습니까'
  '우리는 희생자가 한 명도 없소'
  '그러면 여기 죽어 있는 이 사람은 희생자가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희생자가 아닙니다. 희생이란 것은 내가 남을 위해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은 사람은 희생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1968년2월28일 향군 전국 총회 유시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객관적 정세만을 관망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오는 공허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일축하고, 능동적으로 주체적인 힘을 비축하여 여하한 적의 침략도 분쇄할 수 있는 자주국방의 역량을 증강하고 경제건설을 중단없이 추진해가는 데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하고 분발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1968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우리는 최선의 사태를 夢想하다가 커다란 불행을 자초하는 흐릿한 정신적 자세를 버리고 항상 최악의 사태를 예견하고, 비록 내일 적이 저절로 자멸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태세와 결의만은 굳게 가다듬을 줄 아는 현명을 지녀야 한다>(1968년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