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의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북한주민들은 '통제구역', '특별독재대상구역', '이주구역', '정치범 집단수용소', '유배소', '종파굴' 등으로 부르고 있다. 북한당국은 'OO관리소'라고 부른다. 예컨대 '요덕정치범수용소'는 '제15호관리소'로 불리는데 기록상으로는 조선인민경비대 예하부대처럼 위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른바 반당·반혁명분자 등 체제위해분자 20여만 명을 재판절차없이 집단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래는 이른바 적대계층 가운데 체제위해분자 즉, 숙청된 종파분자, 반당·반혁명분자, 과거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및 월남자가족,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자유세계를 동경 찬양자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당의 간부로 있다가 나중에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가족이 점차 주류를 이루었으며 특히 김일성우상화 강화과정에서 수용대상이 증가하였다.

정치범수용소는 수용인들의 탈주·소요방지를 위해 철저한 감시·통제체계를 갖춰 운영하는데 외곽 경계선에는 3~4m 높이의 4~6중 철책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탈주가 용이한 곳에는 전기철조망, 지뢰밭, 함정 등을 설치하고 외곽의 울타리를 2㎞간격으로 7미터 높이의 감시망루를 통해 감시하고 있다.

탈주를 기도하다 발각되면 경비원들에 의해 무차별 사살되며 체포될 경우에는 유격대 훈련장에서 살인훈련용으로 제공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해진다.

일단 수용소에 수감되면 주민으로서의 권리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도 일체 박탈당한 채 생산력을 제공하는 도구로서 존재하게 된다.

입소 즉시 공민증을 박탈당하고 선거권·교육받을 권리 등도 제약받으며 식량·생필품 배급은 물론 결혼·출산 등도 금지시키고 있으며 면회 및 서신연락 금지 등 외부와 연락을 일체 차단 당하고 있다.

수용자 일과는 작업반별 성격 및 계절에 따라 다소 상이하나 농장 작업반의 경우 새벽 5~6시경 기상, 저녁 8시까지 작업을 실시하고 사상교양과 인원점검 후 밤 10시 잠자리에 든다. 탄광 작업반은 동·하절기 구분없이 1일 3교대로 작업하는 등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주식은 강냉이와 감자, 밀, 보리로서 수확기에 각 1회 배급하며 공급량은 종류에 관계없이 1인 1일 기준 탄광은 600g, 지역지구는 500g이나 최근에는 식량사정을 이유로 100~200g 정도 배급된다. 부식은 채소류는 거의 공급이 없고 소금이나 간장·된장 등을 소량 지급, 마늘·고춧가루 등은 텃밭에서 조달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용자들은 먹을 것의 절대 부족으로 나물·풀뿌리 외에 쇠똥속의 콩이나 개구리알까지도 취식하는 형편이며 판자나 거적으로 만든 집의 나무껍질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용자 대다수가 영양실조로 펠라그라병, 결핵, 간염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수용소는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 자강도 등 모두 지형과 산세가 험악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역별로 보면 함남의 요덕·단천·덕성, 함북의 화성·청진·회령, 평남 개천·북창, 평북 천마, 자강도 동신 등 10개로 파악되고 있다.

수용소는 수용자들의 죄상에 따라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완전통제구역은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나 해외로 도주하려다 잡힌 정치범들이 종신 수용된다. 혁명화구역은 상대적으로 죄질이 경미한 정치범들이 수용되며 3∼10년이 지나 김부자 체제에 충성할 만큼 사상개조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심사를 거쳐 내보내기도 한다.

수용소의 관리는 이분화되어 총괄조정과 통제는 국가안전보위부 수용소관리국에서 담당하되 경비는 인민보안성 산하 인민경비대에서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