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치범수용소는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완전통제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화구역'이다. 완전통제구역은 종신수용소로서 여기에 한 번 수용되면 다시는 일반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수용자는 광산, 벌목장 등에서 처참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은 수용소 내에서 죽게 된다. 따라서 완전통제구역의 수용자들에게는 사상교육을 시키지 않고 채광 및 영농기술 등 생산에 필요한 지식만을 교육시킨다.

혁명화구역은 다시 '가족구역'과 '독신자구역'으로 나뉜다. 여기에 수감되는 정치사상범은 일정기간(1년 내지 10년) 경과 후 심사결과에 따라 출소가 가능하다. 출소시에는 수용소 내의 생활상을 일체 누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데 이를 위반하면 재수감된다.

이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출소된다고 해도 적대계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최하층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며, 국가안전보위부의 최우선 감시대상이 되어 직장배치, 이동 등 모든 부문에서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출소 후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량이 10년 가중된다.

안명철씨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중 함남 요덕의 '15호관리소'만이 유일하게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이분화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완전통제구역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아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수용소는 15호관리소 내의 혁명화구역뿐인 셈이다.

혁명화구역에는 대체로 북한의 엘리트와 재일조총련 간부와 인연이 깊은 북송교포나 그 가족들이 수용된다. 북한당국은 이들을 수용소에 수용하여 육체적 고통을 가한 뒤 사회에 복귀시킴으로써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 순응케 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사상범들은 모두 종신수용소에 수감된다.

귀순자인 안명철과 강철환의 증언에 의하면, 종신수용소에 수감된 사람 중 극히 일부는 종신수용소에서 혁명화구역으로 이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대부분은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어 다시는 일반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1999년 입국한 탈북자 김용씨는 완전통제구역 14호 관리소에서 생환한 최초의 북한인으로 알려졌는데 완전통제구역내의 생활 및 동료 수감자들, 그리고 전쟁포로로 추정되는 서양인이 존재했다는 증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