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완전 통제구역’으로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로 꼽힌다.

회령 22호 정치범수용소는 이미 해산된 종성(13호), 온성(12호)수용소와 함께 1950년대 말부터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령, 온성, 종성수용소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로 경계선만 만든 채 나란히 밀집된 상태로 존재했다.

이 세 군데의 수용소에는 8.15 해방이후 숙청된 지주, 자본가, 기독교인등과 6.25전쟁 때 미군과 국군을 도운 사람들, 그리고 5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권력투쟁과 그로 인해 숙청되는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수감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강력한 우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국경지대가 안전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5월 온성 수용소에서 정치범들에 의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5000여명의 정치범을 학살되면서 국경지대에 밀집된 수용소운영을 재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유사시 때 정치범들의 대규모반란으로 제 2전선이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회령을 제외한 온성, 종성 수용소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회령수용소 경비병 안명철 씨는 해체되는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부모와 아이들이 각기 다른 기차에 오르기 전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울부짖는 처참한 광경은 나치수용소에서 독가스 실로 실려 가는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다고 말했다.